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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질의 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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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요즘 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쓸고 있는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 그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세베루스 스네이프일 게다. 악한인 줄 알았는데 실은 사랑한 여인의 아이를 지키고자 오랜 세월 이중스파이 노릇을 한 순정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리즈 첫 편부터 그는 도덕적 모호함의 표상이었다. 악의와 선의의 혼재, 가해자이자 피해자, 더하여 일반인과 마법사의 결합으로 태어난 저주받은 ‘혼혈’. ‘해리 포터’엔 그뿐 아니라 다층적·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인물과 사건이 넘친다. 이 작품이 가진 최고의 힘이라 생각한다.

 현대로 올수록 불균질성이 갖는 가치는 커지고 있다. 사회가 다변화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서구 대중문화는 이미 ‘균질화에 대한 반역’을 핵심 전략으로 삼은 지 오래다. 스타들 또한 육체적·정신적 흠을 감추기보다 캐릭터 완성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삼는 데 능하다. 그들의 ‘스토리’는 대개 그들의 고통이나 약점, 악의, 상처로부터 나온다.

 할리우드 수퍼스타 조니 뎁의 연인은 가수 겸 배우 바네사 파라디다. 전형적 프랑스 미인인 그녀를 차별화하는 건 벌어진 앞니다. 그걸 교정하기는커녕 활짝 드러내고 웃길 즐긴다. 그녀가 개성 강하고 히피 기질 다분한 자유론자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뎁과 파라디는 12년을 사귀며 아이 둘을 낳았다. 결혼 계획은 없다. 팬들은 이해한다. 바네사는 ‘그런 앞니’를 지닌 여자인 거다.

백인 수퍼모델 하이디 클룸의 남편은 흑인 팝스타 실이다. 실의 얼굴엔 깊은 흉터가 있다. 어린 시절 당한 학대의 흔적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클룸이 전 애인의 버림을 받았을 때 처음 만났다. 실은 이미 임신 6개월이던 그녀를 따뜻하게 감쌌다. 불행과 편견을 이겨낸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팬들의 로망이 됐다.

 무미한 웰메이드보다 스토리를 품은 불균질에 매혹되는 성향은 소비생활에도 나타난다. 이른바 ‘에지(edge)’에 대한 집착이다. ‘모서리’ ‘통렬함’ 같은 뜻을 지닌 이 단어는 기존 관념에 충격을 주는 독특한 스타일을 칭할 때 쓰인다. 에지 있는 제품은 관리가 까다롭고 실용성이 떨어져도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이마저 ‘아름다운 결함’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독일 명차의 딱딱한 서스펜션에 열광하고, 아이폰4G의 안테나 결함마저 “디자인 완성을 위한 희생”이라고 두둔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매끈한 것, 균질한 것, 누가 봐도 좋고 예쁜 것에 지나치게 매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예인의 얼굴을 구분 못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화장법, 성형수술 결과가 비슷해서다. 광고도 미끈함과 새 기술을 강조한 것들이 대종을 이룬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인다.

 우리 기업, 우리 사회도 이제 불균질의 매혹에 적극 반응할 때가 온 것 아닐까. 그러려면 조직 안에 ‘딴 감각’을 지닌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혁신의 에너지는 충돌 없이 발현되지 않는다. 독특한 직관과 감수성으로 무장한 ‘모난 돌’들이 절실한 때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