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바꿔치기’ 공모 …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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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사기범 강모(29)씨는 지난 5월 자신의 변호인인 부장판사 출신 김모(48) 변호사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놨다. 접견 도중 “나는 진짜 범인이 아니며 진범은 따로 있다. 매달 200만원씩 받는 대가로 허위 증언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강씨는 신모(33)씨와 정모(32)씨를 진범으로 지목하고 항소심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강씨는 2009년 9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사진 보냈어요. 버튼 눌러 확인해요’라는 문자메시지 20여 만 건을 보내 수신자가 무심코 사진을 확인하면 건당 2990원의 정보이용료가 부과되게 하는 수법으로 6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특경가법상 사기)로 기소됐었다.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상태였다.

 강씨는 “당초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풀려날 걸로 예상했는데 특수절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 때문에 실형이 나와 사실대로 털어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신반의하던 김 변호사는 신씨를 찾아가 사실인지 물었다. 신씨가 순순히 사실이라고 시인하자 김 변호사는 강씨의 항소심을 맡기로 하고 항소이유서도 제출했다. 그러자 신씨가 “강씨의 변호사 비용을 내가 대고 있다. 강씨가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수임료로 2000만원을 줄 테니 강씨가 진술을 유지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제의했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지난 6월 강씨를 접견하면서 “1억원을 줄 테니 허위자백을 유지해 달라”는 신씨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이후 김 변호사는 신씨의 친구 박모(32)씨가 강씨 어머니에게 5000만원을 건넨 직후 강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확인서도 받았다고 검찰은 말했다. 나머지 5000만원은 항소심 결과가 1심과 같이 나오면 받기로 한 강씨는 약속대로 항소심에서 자신이 진범이라며 진술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고검은 강씨가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이 진범이 아니라고 적은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 점에 의심을 품고 사건 재수사를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지난달 중순 신씨와 공범 정씨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들이 검찰 적발에 대비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적어 강씨에게 외우도록 한 A4 용지 20쪽 분량의 문건을 찾아냈다. 검찰은 김 변호사의 집과 사무실도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김 변호사의 집에 있던 ‘5000만원 수령 확인서’도 확보했다.

 검찰은 1일 범인도피교사 등 혐의로 신씨를 구속 기소하고 공범 정씨를 불구속 기소하고 김 변호사와 허위증언을 한 강씨, 신씨의 친구 박씨 등 3명도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비밀유지 의무를 준수했으며 정당한 변론권의 범위를 벗어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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