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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간판보다 창업이 먼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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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베르주(19)
는 5일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토요일 새벽 2시. 그는 아직도 학교에 남아 컴퓨터 화면에서 3차원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의 신발은 포장지와 빈 콜라캔 사이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며칠간 면도도 하지 않았고 눈은 붉게 충혈됐다. 컴퓨터 스피커에서 나오는 요란한 테크노 음악을 듣던 그는 의자에 기대며 배시시 웃었다. “이보세요, 여기는 호텔이 아니에요. 일하러 남아있는 것이라구요.” 이곳 프랑스 정보기술학교(EPITA)
는 매일 24시간 문을 열어 둔다.

야심 있는 프랑스 학생들은 언제나 열심히 공부해왔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세기만 해도 학생들은 그랑 에콜이라 불리는 명문대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동급생들과 연줄을 형성했다. 엘리트들은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취직했지만 나머지는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 경제에 불어닥친 변화의 물결, 특히 인터넷으로 인해 젊은 세대는 과거와는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최고 명문인 국립행정학교에 지원하는 학생 수는 지난 2년 동안 3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창업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1990년대 실리콘 밸리로 떠났던 약 6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귀국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중 하나다. 영국 인터넷 신생업체의 프랑스어판인 라스트미니트.컴社의 자크 블루자르는 “과거에는 출세하려면 연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사회가 크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성공한 인터넷 기업인중 한 명을 들라면 넷2원의 사장 제레미 베레비(21)
를 들 수 있다. 그는 1994년 인터넷을 처음 접한 뒤 CNN의 프랑스어 대화방을 운영했으며 ‘컴퓨서브로 서핑하기’라는 책을 펴냈다. 전부 18세 이전에 이뤄진 일이다. 그는 “이 회사들은 내가 업무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큰 일을 맡겼다”고 말했다. 현재 30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벤처 자본 1천5백만 달러를 확보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지만 여러 일류 대학에서 인터넷 경제에 진출하는 방법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규칙이란 무엇일까. 우선 젊을 때 사업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질 마샥(28)
이나 베누아 메네송(28)
은 14세 때부터 사업 파트너였다. 세번째로 손을 잡은 지금은 스트림파워社를 운영하고 있다. 스트림파워는 쌍방향 TV 서비스 사이트로 프랑스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몇 안되는 인터넷 기업중 하나다.

그들은 올해가 가기 전에 주식을 공모할 계획이다. 그런 기회 때문에 프랑스의 닷컴 세대는 부모들의 태도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온라인 상품 안내 가이드 브라보네스토!를 설립한 에릭 페르보-브링크는 아버지를 회사의 재정담당 이사로 앉혔다. 그는 “과거의 가족회사는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요즘 회사는 아들이 중심”이라고 말했다.

특히 EPITA 학생들이 가장 열심이다. 매월 첫째 화요일에는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인재들과 벤처 자본가·언론인이 한데 모이는 모임이 열린다. 지난주 열린 이 모임에는 EPITA 학생 아모리 드 랑셰(18)
가 참석했다. 그는 오리앤 가르시아(27)
와 대화를 시작했다. 가르시아는 무료 전자우편 서비스를 실시하는 카라메일社를 지난 2월 스웨덴의 검색엔진 스프레이.컴社에 2백만 달러에 매각했다. 그녀는 ‘로카세’라는 검색엔진을 만든 1995년부터 그 모임에 참석했다.

로카세도 2백만 달러에 매각됐다. 그녀는 지난해 프랑스의 인터넷 잡지 주르날 뒤 넷에서 프랑스의 가장 유망한 기업인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 모임에 참석한 쥘리앙 마시농(20)
은 단편영화를 보여주는 웹사이트를 매각하려는 학생이다. 그는 “이것은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파리 시내의 ‘실리콘 상티에’(거리)
에는 많은 신생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과거 우중충한 소규모 공장들이 붙어 있던 한 골목에도 14개의 신생기업들이 들어섰다. 프랜시스 코언(26)
은 뉴욕에서 2년간 지내다 귀국해 이곳 낡은 공장에 K-모빌社를 설립했다.

그는 “우리에겐 일이 삶의 이유”라고 말했다. 배고픈 문인들로 가득했던 값싼 꼭대기층은 10대들이 벤처 자본을 기다리는 곳이 됐다. 富의 과시에 대한 프랑스인의 뿌리깊은 혐오도 찾아볼 수 없다. 1월 상장 이후 시가가 5배 오른 온라인 신용평가 기업 넷밸류社의 엠마뉘엘 브리사르는 “나를 비롯해 우리 팀원들 모두가 백만장자”라고 당당히 말했다.

물론 여유로운 삶을 자랑으로 삼는 나라에서 이런 일중독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프랑스의 VSD誌는 최신호 커버에서 “당신은 인터넷 노예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新경제를 비판하는 책과 영화도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물결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뿐이다. 라스트미니트.컴의 직원은 1년도 안 돼 50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20대 중반이다. 그들은 정장을 입지 않으며 휴대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학벌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조엘 쿠르투아 EPITA 교장은 “이 학생들에게 과거 프랑스의 모델은 걸맞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모델을 만드느라 열심이다. [뉴스위크=Scott Johnso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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