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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해지고 싶은 사람을 위한 대화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9호 10면

만일 그대가 충분히 고독한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 글은 오직 주위에 친구나 동료가 많고, 그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글이다. 드물겠지만 반드시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인기가 많아서 도무지 고독해질 틈이 없는 사람, 그래서 괴롭고 슬픈 사람. 가령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한 시인 정현종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가 누구든 이 글을 읽고 충분히 고독해진다면 기쁘겠다.
사람들 사이에 말이 있다. 우리는 그 말을 하고 산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다. 고독하고 싶다면 말을 잘해야 한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하루는 김 부장이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원래 넥타이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 맨 것이라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넨다. “오늘 넥타이 멋지네요.” “넥타이가 잘 어울리십니다.” “그거 어디서 샀어요?” 김 부장은 칭찬이 어색하다. 그것은 살아오면서 수십 번, 수백 번도 넘게 사진을 찍었지만 여전히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얼굴 근육이 굳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 김 부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살게요.”

가끔 윤 대리는 삶은 감자를 가져와 사무실에서 아침으로 먹는다. 파티션이 있지만 그 너머 김 부장이 있다. 혼자 먹어도 모자랄 자신의 아침을 착한 윤 대리는 동료에게 내어준다. “이거 좀 드세요.” 원래 주는 것은 먹고 보는 김 부장이지만 거절할 때도 있다. 조금 전 혼자 커피와 베이글을 먹어서 배가 부른 때라면. 김 부장은 받은 감자를 잠깐 들었다 내려놓는다. “들었습니다.”

김 부장은 가능한 한 음식을 사무실로 가져오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아까운 것을 동료와 나눠 먹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김 부장이 어쩌다 먹을 것을 가져왔다고 해보자. 그도 사람인지라 옆자리 박 팀장에게 권한다. 물론 본심은 아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대개 한 번은 사양한다. 절호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박 팀장의 “괜찮아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 부장은 말한다. “고마워요.”

신 팀장은 원룸에서 혼자 살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한 물건을 사무실로 배달받는다. 어떤 사람은 박스를 뜯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신 팀장은 받자마자 박스를 뜯어 자신이 산 옷이며 가방, 구두를 동료에게 자랑한다. 꼭 물건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그린 그림, 쓴 글,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도 자랑한다.

자랑하고 싶을 때 사람은 좀 뻔뻔해진다. 상대에게 감탄과 칭찬을 은근히 강요한다. 가령 파마를 한 신 팀장이 김 부장에게 “부장님, 저 머리 어때요?”라며 묻는다고 해보자. 본심과 달리 김 부장도 그냥 “예쁘네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절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못 믿겠다면 그건 그대의 자유다. 김 부장은 신 팀장에게 묻는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이미 흥은 깨지고 기분도 살짝 상했지만 신 팀장은 웃으며 다시 묻는다. “그럼요. 정말 어때요?” 김 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음… 예쁘네요.” 그렇다. 그대의 자유가 이겼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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