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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기업파괴’ ‘자기파괴’만이 살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임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 인터뷰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건설에 앞장서고 있는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55)
은 e-메일을 직접 열어 본다. 이 인터뷰도 메일로 신청해 이루어졌다. 그는 정책 건의를 담고 있거나 개인적인 메일에 대해서는 직접 답장을 한다고 했다.

─‘기는’ 초고속 인터넷 업체들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높습니다.

“4월 정도 지나면 ADSL의 적체는 해소될 겁니다. 5월부터 시행하기 위해 한국통신·하나로통신·두루넷·드림라인 등 사업자별로 품질 수준을 공개하는 ‘인터넷망 품질 수준 공표제도’를 준비중입니다. 이용자로부터 사업자에 이르기까지 구간별 접속 성공률, 수신속도, 단절률 등을 측정해 공표할 겁니다.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업자들의 자발적인 품질개선 노력을 유도하자는 거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업자들로서는 심각한 문제일 겁니다.”

─지금 선택해야 한다면 무얼 보고 골라야 합니까?

“요금과 트래픽 걸릴 때의 속도 등 품질을 봐야겠죠.”

─직업공무원 출신이라 IMT-2000(차세대 영상 이동통신)
사업자를 공정하게 선정할 것이란 기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다들 승복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도 투명하게 선정할 겁니다. 그러자면 기술적·재무적 능력도 검토해야겠죠. 사업자 수, 선정방식, 주파수 할당, 기술표준 등 세부방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상반기중 세부방침을 결정하고 하반기에 선정할 예정입니다. 그럼 2002년께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국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면 아무래도 중소기업들이 불리해지는 것 아닌가요?

“중소기업들을 염두에 두고 무슨 유인장치를 검토한 일은 없습니다.”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장점유율을 50% 이내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시장개입적인 발상 아닙니까?

“PCS 서비스는 시작한 지 2년밖에 안 돼 경쟁기반이 취약합니다. SKT의 점유율이 57%까지 올라가면 경쟁이 어려워지고, 집중화·독점화될 우려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이용자도 손해입니다. 물론 통신사업의 대형화는 세계적인 추세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효과도 있죠. 그러나 경쟁기반이 갖춰질 때까지는 정부가 일정하게 가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공정위가 전체 산업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입니다만….”

─지역간 정보격차 해소에 우선순위를 두시겠다는 말을 들으니 지방시대는 정치도 경제도 아니고, 정보화로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화가 진행되며 정보의 비대칭성은 완화되겠지만 정보량의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들이 초고속망을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자금을 최우선적으로 투입하고, 정보화 교육을 통해 활용능력을 키우는 정책을 펴겠습니다. 또 지역간 불균형이 깊어지지 않도록 이용가구가 적은 농어촌의 경우 위성 인터넷 등 다양한 모형을 모색할 생각이에요. 업체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검토하고.”

─반응이 좋다는 ‘사이버대학’에 소위 명문 대학들이 빠져 있습니다. 사이버 강의 인프라 미비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학점상호인정 문제, 즉 학교간 격차가 문제 아닌가요?

“학점상호인증제 문제가 대두할 수도 있겠죠. 일단 참여한 15개 대학에서는 호응이 대단합니다. 5일 동안 사이버 강좌 수강신청을 받기로 했는데 첫 날 30분 만에 1천5백명이 전원 마감됐어요. 다른 얘기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학교 순위는 바뀔 거예요. 온라인 교육이 강화되면서 학생들이 간판보다는 훌륭한 교수를 따라갈 겁니다. 대학본부만 두고 교수진으로는 외국의 석학 등 여러 학교에 소속된 다양한 인력을 활용하는 학교도 나올 겁니다.”

안장관은 72년 행시 합격 후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
·공정거래위·정통부 등에 근무한 정통 경제관료로, 입각 전 현 정부 최장수 차관이었다. 차관 시절 그는 대한통운과의 소포 택배 업무에 관한 전략적 제휴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이 달부터 대한통운은 우체국이 취급하기 어려운 대형화물을 대신 운송·배달해 주고, 우체국은 대한통운이 손을 뻗치기 힘든 섬·산간 벽지에 대한통운의 소포화물을 배달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손을 잡음으로써 추가적인 투자 없이 오지 주민들도 전자상거래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윈-윈 전략이죠. 아, 적국과도, 경쟁사업자와도 전략적 제휴를 하는 세상인데요. 처음엔 택배업체들이 ‘왜 정부가 민간 영역을 침범하느냐’고 합디다. 사실 소포 배달사업은 92년 택배업이 생기기까지 1백년간 정부 독점사업이었는데 말이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충돌양상은 어떻게 발전할까요?

“결국 온라인으로 통합돼 갈 겁니다. 인터넷 세상은 극한경쟁의 세계이자, 애덤 스미스가 말한 완전경쟁이 시작되고 실현되는 곳입니다. 기업들은 무슨 수를 쓰든 인터넷을 활용해 생산성을 올려야 돼요. 단적으로 온라인상에서는 1시간 후 가격을 아무도 예측 못합니다. 전통 산업은 여전히 존재할 겁니다. 생산성도 높아지구요. 그러나 더 이상 고용을 창출하지는 못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공업기술의 발달로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농업인구는 줄어들었듯이, 정보기술(IT)
의 발달로 제조업의 생산성은 몇 배 늘어나겠지만 추가로 고용이 창출되지는 않을 거예요. 이것이 IT가 산업을 주도한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생산방식, 일하는 방식이 바뀔 겁니다. 담양 고추장처럼 지역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산업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업종이라면 인터넷으로 무장을 해야 돼요.”

농사의 예를 들어 보자. 농경시대엔 황소가 밭을 갈았다. 산업시대로 넘어오며 트랙터가 그 일을 떠맡았다.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정보시대로 넘어오자 기후정보·농사기술·시장정보를 활용하는 사람이 돈을 벌고 있다. 같은 트랙터로 농사를 짓지만 수확량을 조절해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브리태니커사가 왜 망했는지 설명했다. 사람들이 크고 무거운 백과사전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DB(데이터 베이스)
를 구축해 온라인 서비스로 돌아서는 게 유일한 생존의 길이었지만 노조가 반발했다. 만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50%가 떠나고도 회사는 재기하지 못했다. 그는 철저한 ‘기업 파괴’, ‘자기 파괴’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질적으로 벤처니 지식기반산업과 잘 맞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자질이 있습니다. 개인주의 성향과 개성이 강하고,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그래요. 자기 거라면 물불 안 가리고 일하죠, 머리 좋죠, 놀기 좋아하죠. 우리 적성에 딱 맞습니다. 교육이 창의성을 외면하고 있어 좀 문제죠.”

─98년 말 재산등록가액(2억5천3백59만원)
은 김명자 환경부 장관(2억4천6백36만원)
에 이어 현 국무위원 중 두번째로 적고, 지난해 재산 증가액은 대통령을 포함해 15명 중 8번째로 중간 정도시네요.

“따로 상속받은 게 없어서 그래요. 지난해 2천6백만원 정도 늘어난 건 은행 대출금을 갚았기 때문입니다.”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하면 그게 정상입니까?

“맞벌이 아니라면 그렇습니다.”

─공직관이 뭡니까?

“공직에 있는 사람은 무한대의 봉사자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도 행복하구요.”

─한 30년 국민에게 봉사했으니, 공직을 마치고 정보통신업계로 옮겨 돈을 좀 버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경쟁력이 없어 그런 쪽은 생각도 못합니다. 아이디어는 줄 수 있겠죠. 젊은 사람들이 해야죠.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의 발달이 몰고 온 혁명적 변화를 다뤄 보고 싶어요.”

·45년 경기 화성生
·대경상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 경제학과卒
·80년
경제기획원·공정거래위원회(거래국장·독점관리국장)
·재정경제원(비서실장·국민생활국장)

·96년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정보통신정책실장
·98년 정통부 차관
·2000년 2월 6대 정통부 장관

이필재 기자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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