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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럭 클럽’의 웨인 왕 감독, 전지현 주연 ‘설화와 비밀의 부채’ 내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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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왕(Wayne Wang) 감독이 전지현과 만났다. 중국계 미국인인 왕 감독은 ‘조이 럭 클럽’ ‘스모크’ ‘여기보다 어딘가에’ ‘센터 오브 월드’ 등으로 꾸준히 세계 영화 팬들을 감동시켜왔다. 그가 신작 ‘설화와 비밀의 부채(Snow Flower and The Secret Fan)’의 여주인공으로 전지현을 선택했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한 우정과 사랑을 나눈 두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제작진은 이 영화를 “미국 영화도, 중국 영화도 아닌 국제적 영화(International Film)”라고 정의했다. 전지현은 영화에서 가족을 잃는 아픔과 가난에 고통받는 여인 설화와 소피아 두 역할을 오가며 호연을 펼쳤다. 한국계 중국인으로 캐릭터가 설정된 덕에 영어·중국어에 한국어까지 곁들이며 열연했다. 왕 감독을 비롯한 프로듀서들과 공동 주연을 맡은 중국계 배우 리빙빙 역시 ‘지아나(Gianna·전지현의 영어 이름)’의 아름다움과 내면 연기에 연방 찬사를 보냈다. 영화는 지난 15일 북미 대륙에서 먼저 개봉됐다. 영화의 정식 개봉을 앞두고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왕 감독을 만났다.

LA중앙일보=이경민 기자

●전지현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주 오래전 ‘새시 걸(My Sassy Girl·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영어 타이틀)’을 봤다. 영화가 정말 재미있었고, 전지현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러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안 전지현이 나를 만나기 위해 직접 중국까지 찾아왔다. 전지현에게 시나리오를 주며 그중 한 장면을 그 자리에서 읽어보라고 시켜봤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대사를 읽었는데도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묻어났다. 놀라웠다. 표현력이 대단하고 내면의 힘도 느껴졌다.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는데, 보자마자 우리가 찾던 설화와 소피아의 이미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역인 리빙빙과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루는 얼굴과 이미지였다. 서양 관객들도 쉽게 차이점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대조였다. 우리에겐 그런 주인공이 필요했다. 프로듀서들은 아시아 전역에 어마어마한 팬층이 있다는 점에서도 전지현을 마음에 들어 했다.”

●영화 속 전지현의 캐릭터를 한국계 중국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자료 조사를 위해 상하이에 머물면서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국제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었고 특히 한국인 사회가 컸다. 일제 지배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이라 당시 많은 한국인이 그곳으로 이주했고 아직도 상당수가 상하이를 삶의 터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 상하이의 모습을 정확히, 그대로 담고 싶었고, 그런 면에서 ‘와이 낫 코리안(Why not Korean?)’이라고 생각했다(웃음).”

●여성 배우, 여성 프로듀서들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렵진 않았나.

 “그간 쭉 해오던 일이라 어렵진 않았다. ‘조이 럭 클럽’ 때는 8명의 여배우와 작업을 했었으니까. 사실 여성들이랑 일하는 게 좋다. 자라오면서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할머니와 더 가까웠고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사람은 누구나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경계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뿐이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 여성들만이 느끼는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은 나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 부분을 전지현과 리빙빙이 완벽히 채워줬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는 식으로 둘 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나에게 확실히 전달했다. 나도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하며 두 배우의 의견을 존중했다.”

●원작 소설에서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후회’라는 감정이었다. 그동안 털어놓지 못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아주 완고하고 전통적인 중국 남자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정말 갈등이 많았다. 그중엔 풀어진 것도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동안 억누르고 모른 척했던 아버지와의 상처나 갈등을 하나씩 풀어나가야겠다 생각할 즈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지금껏 이런 이야기들을 다루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에는 내가 진하게 느꼈던 풀지 못한 갈등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인도, 미국인도, 여자도, 남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란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원작에는 없는 오늘날의 두 여성 이야기를 병치시켰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의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여전히 변함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려보고 싶었다. 과거에 비해 중국 여성들은 더 많은 자유와 표현의 기회를 갖게 됐지만, 친구 사이에서 그들이 갖게 되는 다양한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설화의 후손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는 설정으로 이를 풀어내 보고자 했다. 소피아가 니나에게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특히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나.

 “아들이 죽고 난 후 남편에게 두들겨 맞은 설화를 릴리가 어루만져 주는 장면이다. 시나리오에는 ‘릴리가 설화의 상처를 닦아준다’고 아주 간단히만 언급돼 있는데, 전지현과 리빙빙은 이를 너무도 특별하고 감정이 넘치는 장면으로 완성해냈다. 우정도, 섹슈얼리티도 넘어서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각별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곁들여진 첼로 선율도 이 장면의 감정을 완벽히 잡아냈다. 나 스스로도 아주 감동을 많이 받은 장면이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뭘 얻길 바라나.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한다. 언제나 무거운 부담감이 우릴 짓누르고 있다. 이런 삶에서 누군가와 진정한 친구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친구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졌다. 게다가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하는 것으로 인해, 친구에게 ‘진짜 시간’을 쓰는 일도 드물어졌다. 이런 세상에서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와 사랑의 감정을 다하는 친구 사이, 우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1930년대 하와이에서 활약한 찰리 챈이라는 유명한 중국계 형사가 있다. 연태황이라는 중국인 작가가 이 사람에 관해 쓴 이야기가 곧 책으로 나오는데, 이를 각색해 영화로 제작해보려 한다.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j칵테일 >> 리빙빙이 본 전지현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 촬영을 통해 처음 만났다. 둘 다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지만 어찌 보면 언어 장벽은 우리 둘 사이를 더 가깝게 해줬다. 서로의 마음과 표정을 읽기 위해 상대방에게 온전히 더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어로, 지현은 한국어로 서로 떠들어댄 적도 많다. 덕분에 다른 누구와도 느낄 수 없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감정들이 생겨났다. 첫 촬영이 결혼식 후 떠나가려는 릴리에게 설화가 부채를 전하는 장면이었다. 지현이 살며시 부채를 쥐여주며 내 손을 잡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깊고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때 지현이 정말 멋진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미묘한 뉘앙스를 갖고 있는 배우였다. 촬영 일정이 빡빡해 더 친해질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요즘도 아이폰 바이버를 통해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낸다.”

>>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 제작자는 루퍼트 머독의 부인

웬디 덩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중국계 미국인 여성둘이 제작했다. 그중 한 명이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80)의 부인 웬디 덩(Wendi Deng Murdoch·43)이다. 최근 영국 하원 청문회장에서 남편에게 면도 거품을 뿌린 한 남성의 뺨을 때려 글로벌 스타가 됐다. 웬디는 지난달 남편과 함께 상하이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영화산업에 깊이 발을 담가 왔다. 또 다른 프로듀서는 플로렌스 슬로언이다. MGM 그룹의 전 회장인 해리 슬론의 부인이다.

 영화는 리사 시의 동명 소설을 각색해 만든 것이다. 원작 소설은 52주간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고, 전 세계 38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전족의 관습이 잔재해 있던 19세기 중국 후난성 지역에서 ‘라오퉁’이라는 특별한 친구관계를 맺고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비밀의 문자로 소통하며 살아가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여기에 21세기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병치시켜 한 차원 깊은 내러티브를 완성해 냈다. 전지현·리빙빙이 주연을 맡았고,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도 조연으로 출연해 영화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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