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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스크에 베팅 … 깨진 ‘펀드의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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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앤서니 볼턴(61·사진) 차이나스페셜시추에이션(Special Situation)펀드의 매니저는 신화다. 적어도 글로벌 투자의 세계에선 그렇다. 그는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의 영국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를 운용하면서 27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쓴 셈이다. 경쟁시장에서 투자자가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을 꾸준히 거둬들이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볼턴의 신화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그가 홍콩에서 설정해 운용 중인 차이나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중국펀드)는 올 1월 1일~7월 18일 원금을 12.36%나 까먹었다. 벤치마크인 MSCI차이나 지수는 7.87% 정도 손해 봤을 뿐이다. 비교 기준보다 4.49%포인트 더 손해 봤다. 수수료를 더하면 투자자의 손해는 더 커진다. 볼턴은 해마다 원금 1.89%를 운용 보수로 뗀다. 이를 감안하면 투자자 원금은 16.85%나 줄어든 셈이다.

 볼턴도 할 말은 있다. 연간 수익률은 4.4%다. 반면 벤치마크는 -1.13%다. 게다가 그는 지난해 4월 19일 펀드를 설정했다. 1년 남짓 됐을 뿐이다. 아직 성공이다 실패다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중국펀드는 아주 공격적이다. 시장 평균보다 높은 리스크를 감수한다. 인수합병(M&A) 등 ‘특별한 상황(스페셜 시추에이션)’에 처한 종목을 의도적으로 사들여 고수익을 좇는다. 시장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을 내야 제값을 하는 셈이다.

 볼턴은 자신의 과거 성적과 견줘 아주 낮은 수익을 내고 있다. 그는 영국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를 운용할 땐 해마다 18% 정도씩 투자자의 돈을 불려줬다. 그는 투자 미디어인 머틀리풀과의 인터뷰에서 “중국펀드 실적이 아주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까닭은 두 가지였다. 우선 그는 한국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 볼턴은 투자자들에게 띄운 서한에서 “한국 코스피 풋옵션이 펀드의 손해를 야기한 중요한 요인(major driver of losses)”이었다고 밝혔다. 최근 1년 사이에 한국 주가가 떨어진다는 데 베팅했으나 오르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는 얘기다.

 볼턴은 남북관계가 악화돼 코스피가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럴 만했다. 지난해 3월 천안함이 격침됐다. 볼턴이 펀드 설정을 한창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해 11월엔 연평도 포격 사건이 불거졌다. 외국인 눈에는 코스피가 하락 수준을 넘어 붕괴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해 코스피는 20% 남짓 올랐다. 주가 하락에 베팅한 볼턴을 궁지에 몰아넣기 충분한 상승률이다.

 둘째 요인은 중국 기업들의 불투명이었다. 그는 투자 제한이 있는 중국 본토 기업 대신 뉴욕 증시 등에 상장된 레드칩(중국주)을 사들였다. 이런 종목이 그의 펀드에 30개나 들어 있었다. 전체 자산의 15% 정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 종목 상당수가 회계부정 등으로 상장 폐지되거나 거래 정지돼 주가가 뚝 떨어졌다.

 볼턴은 “그 회사들 모두가 사기치지는 않았다”며 “장기적으로 좋은 투자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상장 폐지나 거래 정지가 볼턴이 찾는 스페셜 시추에이션일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가 현재 손실을 참아내고 기다려줄지는 미지수다.

강남규 기자

◆앤서니 볼턴=1950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졸업 직후 아버지 집에서 빈둥거리다 쫓겨나 1979년 펀드매니저가 됐다. 이후 그는 2006년 말까지 고수익을 거뒀다. 통념을 거스르는 역발상 투자가 비결이었다. 그는 2007년 6월 사실상 은퇴했으나 2009년 하반기 “중국 기회를 놓치기 아깝다”며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영국의 피터 린치(미국 마젤란펀드 매니저)’, ‘투자 세계의 해리 포터’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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