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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평창 국회의원’ 최종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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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평창이라는 동북아 구석에서 2018년 지구촌 겨울축제가 열린다. 이 역사적인 도시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민주당 최종원이다. IOC 위원장이 개최지를 발표할 때 그도 유치대표단 일원으로 남아공 현장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엔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김진선 전 강원지사도 있었다. “평창” 소리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들었다.

 이 장면이 있기 70여 일 전 강원지사 보궐선거 유세장. 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집구석이 하는 짓거리가 전부 이거다. 형도 돈 훔쳐 먹고, 마누라도 돈 훔쳐 먹으려고 별 짓 다하고 있다. 이거 국정조사 감이다. 우리가 총선에 승리해 제대로 걸리면 깜방 줄줄이 간다. 김진선이도 깜방 가고 다 간다.”

 ‘돈 훔쳐 먹는 집구석의 가장’ 이명박 대통령은 영어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을 연습하고 IOC 위원을 만나느라 고생이 많았다. “돈 훔쳐 먹으려고 별짓 다한” 대통령 부인은 그런 대통령을 도와 득표 활동에 애를 많이 썼다. ‘깜방’에 가야 하는 김진선 전 지사는 강원도 촌구석에 기적을 일으킨 영웅이 되어 있다.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자 정치인 최종원은 자신의 발언을 세상이 잊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올림픽 유치 후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대표단이 인천공항으로 개선할 때 최 의원도 꽃다발을 받았다. 갈채 속에 “돈 훔쳐 먹는 대통령 집구석” 발언은 사라졌다고 그는 믿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이가 잊어가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발장도 잊혀지고 있다. 최 의원이 소환에 불응하자 검찰도 손을 놓고 있다.

 그러나 강원도민이 잊어도, 여야와 검찰이 잊어도, 언론은 잊지 않는다. 보궐선거 다음날 중앙일보 사설은 이렇게 썼다. “4·27 재·보선은 어제 끝났지만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꼭 정리해야 할 사안이 있다. 표에 눈이 멀어 저질 발언을 마구잡이로 쏟아놓은 행위다. (중략)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국회는 최 의원을 윤리위에 회부해야 한다. 선거가 끝났다고 흐지부지돼서는 안 된다. 법정 스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 ‘말 빚’에 대한 고뇌를 남겼다. 고뇌할 줄 모르는 저질 국회의원이 남긴 말 빚이 부끄러움의 황사비가 되어 그의 지역구(태백-영월-평창-정선)와 강원도 그리고 전국에 내릴 것이다.”

 최 의원은 정치를 잘못 배운 대표적인 정치 초년병이다. 그는 정치판이라는 데는 아무렇게나 말해도 되고 선거만 끝나면 다 잊혀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회의원은 원래 남에겐 호통치고 자신에겐 부드러워도 된다고 믿는 것 같다. 지난해 8월 민주당 강원도당 연수회에서 도당위원장 최종원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내 취미·특기는 술과 욕이다. 연극계 후배들은 내 욕이 쌍소리가 아니라 뭔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40년 연극배우 생활 내내 ‘예술가 이전에 인간이 되라’고 배웠다. 후보자는 죄를 인정했으니 사퇴하라.”

 올림픽 유치단원 최종원은 같은 유치단원인 대통령, 대통령 부인, 그리고 김진선 전 지사에게 쌍소리를 뱉어놓았다.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IOC 위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역 국회의원이 저 수준이면 그 지역의 수준은 어떨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평창 올림픽은 변방의 미미한 존재가 열정과 노력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류사의 증거물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평창 국회의원’ 최종원도 웅변적으로 변신해야 한다. 품격을 올림픽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정치라는 게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말처럼 ‘정치인 이전에 인간’이 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해야 한다. 최 의원이 변신하면 그것은 평창 올림픽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선물일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