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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정치권·시민단체 개입 … 판 커진 한진중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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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사태가 노동계의 뜨거운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그간 노사가 대립해 왔던 정리해고, 비정규직 차별, 청년실업, 최저임금 등의 이슈가 한진중공업을 통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하반기 노동 운동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한진중공업 사태는 사회 전반의 고용 불안 심리가 보태져 더욱 큰 관심거리로 떠올랐다”며 “노동계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하반기 노동운동의 향방을 결정할 잣대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한진중공업 정문에는 해고자는 물론 대학생, 은행원, 변호사, 공기업 직원, 장애인 등 전국에서 모인 7000여 명을 태운 ‘희망버스’ 행렬이 이어졌다. 이 회사에 남은 정리해고자 100여 명을 응원하기 위해 지난달 700여 명이 탔던 이 버스에 불과 한 달 만에 10배 이상의 탑승자가 몰린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다양한 구호가 쏟아졌었다. “김진숙과 연대하자” “정리해고 철회하라” “비정규직 철폐하라” “이명박(대통령)은 물러가라” 등이다.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인 김진숙(51)씨는 한진중공업의 직장폐쇄 전부터 11일까지 35m 높이의 크레인에서 187일째 ‘대기업의 부당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농성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성희 연구위원은 “탑승자들은 각자 처한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고용불안을 표출한 것”이라며 “당시 나온 주장들은 노동계는 물론 정부도 나서 적극적인 자세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역시 “민주노총은 앞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최삼태 대변인은 “하반기에는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등에 투쟁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은 산적한 노동 현안에서 가장 큰 사안으로 꼽힌다. 고용부 집계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 근로자 1700만여 명 중 33%에 해당하는 557만여 명이다. 노동계 주장대로라면 879만 명(50.4%)까지 불어난다. 정규직 임금의 50~70%을 받고 있는 이들은 항상 실직 위험에 놓여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정의 대타협 없이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이 어렵다”며 “특히 기존 대기업 노조의 양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노사는 또 아르바이트, 파트타임 근로자 등 취약계층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놓고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29일까지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했지만 파행을 거듭하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1일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가 출현하고 있어 앞으로 사측과 대표 교섭권을 누가 갖느냐를 놓고 노·노 간, 노사 간 갈등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타임오프제도 대형 사업장의 노조 전임자 축소 여부에 따라 제도의 안착이 판가름 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개입은 노동 현안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치권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표를 의식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준비 중이던 택배나 퀵서비스 기사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도 정치권의 개입으로 급작스레 발표됐다. 이채필 고용부 장관은 “정치권과 사회운동 세력의 무분별한 노사문제 개입은 사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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