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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대통령·갑부 … 진입 문턱 높은 ‘이너서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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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06면

모나코 국왕 알베르 2세가 지난 6일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도시 결정을 앞둔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질문을 하고 있다. 알베르 2세는 IOC 회의 때마다 질문 공세를 펼치는 걸로 유명하다. 알베르 2세 바로 뒤엔 평창에 실사를 왔던 구닐라 린드버그 스웨덴 IOC 위원, 그 오른쪽은 장웅 북한 IOC 위원이다. [더반 AFP=연합뉴스]

“IOC 위원들과 친구가 됐다고 믿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다니….”
뮌헨 유치위원장인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가 참패를 당한 직후 측근에게 했다는 말이다. 뮌헨 측 핵심 관계자는 “비트 위원장이 엄청난 충격에 빠져 있다”고 귀띔했다.

110명의 IOC 위원들, 그들이 사는 세상

비트 위원장만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니다. 뮌헨의 히든 카드로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합류한 ‘축구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도 “유럽 출신 IOC 위원이 42명이나 투표장에 있었는데 그들이 유럽을 돕지 않은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하지만 유럽국 위원이니 당연히 유럽을 도울 거라 생각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접근이다. 110명의 IOC 위원들은 각자 복잡한 방정식에 따라 움직인다. 이번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전의 큰 변수는 2020년 여름올림픽이었다. 9월 초 유치의향서 제출 마감을 앞두고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이 2020년 여름올림픽에 뛰어들기 위해 분위기를 보고 있다. 암암리에 ‘대륙별 순환 원칙’이 도는 IOC에서 2018년은 비유럽권에 넘겨주자는 움직임이 감지됐고, 따라서 유럽 표의 결집은 어려울 거라고 예상됐다.

여기에다 베테랑 스포츠 외교관인 IOC 위원들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평창의 지난 두 번 실패를 지켜본 관계자는 “지난 두 번 투표에서 ‘나는 평창에 투표했는데 아쉽다’고 밝힌 위원들을 다 합하면 실제 평창이 얻은 표를 훨씬 넘었다”고 귀띔했다. 무기명 비밀투표라 사실 확인을 할 길도 없다.

IOC만의 ‘이너서클’의 문턱은 높다. 나승연 평창 유치위원회 대변인은 “IOC 위원들을 대할 때는 그들의 언어와 몸짓, 미소로 얘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IOC 위원들 앞에는 “HRH(His/Her Royal Highness:폐하·전하)”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자크 로게 위원장도 백작 작위를 받은 귀족이다. 명예직인 IOC 위원은 국빈 대우를 받아 해외여행 시 입국비자가 필요 없으며 공항에선 귀빈실을 사용한다. 투숙한 호텔에는 해당국의 국기가 게양되고 총회 참석 땐 올림픽기를 단 중형 승용차, 통역, 안내요원이 배치된다.

이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이건희 위원이 동료 위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대방 이니셜을 수놓은 냅킨을 준비시킨 것도 그들을 위한 배려의 일환이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유치전을 두고 “난생 처음 갑에서 을이 돼 본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실제로 조 위원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연아 선수, 나승연 대변인 등은 투표 전날까지 IOC 위원들을 찾아다녔다. 투표 전날 힐튼호텔 레스토랑에선 유치 주역들이 식사 중인 IOC 위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레스토랑엔 영국의 앤 공주, 멕시코의 거부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 위원 등이 측근을 거느리고 식사 중이었다. 이들은 비서들을 보내 제일 좋은 자리와 테이블을 잡도록 지시했다. 그들이 들어오자 기자들이 앉은 테이블은 자연스레 ‘찬밥’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 호텔에 출입한 것만으로 기자들은 위안을 삼는다. 이들의 이너서클을 취재하기 위해선 오래 공을 들여야 한다. IOC 위원들이 묵는 힐튼호텔엔 언론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으나 ‘IOC 리스트’에 들어 있는 극소수 기자들은 출입증을 받았다. IOC 관련 취재 기사를 보여달라는 IOC의 요청에 신문을 제출했던 기자도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출입증을 받았다. 여러 번 얼굴도장을 찍고 IOC 미디어 이너서클에 들어가 IOC 위원들에게 “마이 프렌드(My friend: 내 친구)”라는 말을 듣기까지 약 반 년의 세월과 4만 마일리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IOC 위원들도 사람이다. 그들도 계파가 있고 신경전을 벌인다. 한 유럽 IOC 위원은 중동 쪽 동료 위원에 대해 “거짓말쟁이에다 매너도 모르는 IOC의 수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신기자들은 모나코 국왕 알베르 2세를 재미있는 인물로 꼽는다. IOC 총회가 열릴 때마다 마이크 잡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이번 최종 프레젠테이션 후 질의응답 세션에서도 얌전한 침묵을 깬 건 알베르 2세였다. 세 후보도시의 PT가 끝날 때마다 알베르 2세는 손을 들었고 기자들은 “또 시작”이라며 농담을 했다. 뇌물 수수 등 루머도 끊이지 않지만 한 미국인 스포츠 전문 기자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비하면 IOC는 유치원처럼 순수한 조직에 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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