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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서 나온 악과 깡 전쟁엔 도움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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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병대 병영문화혁신 지휘관회의’가 열린 8일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유낙준 사령관(맨앞)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순직 장병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중장)은 8일 오후 ‘해병대 병영문화혁신을 위한 긴급 지휘관회의’를 개최했다. 지난 4일 인천 강화도 소초 총기사건으로 드러난 해병대의 고질적인 가혹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취지에서다. 화상으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유 사령관은 “해병대의 전통은 선·후임 간의 위계질서에 의한 강압이 아니라 끈끈한 전우애로 이뤄진 것”이라며 “아무리 해병대의 전통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이라면 과감히 도려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병영 저변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 악습과 폐습을 반드시 뿌리 뽑을 것”이라며 “더 이상 말로만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구타 등 가혹행위자의 처벌을 강화하고, 가혹행위를 은폐·축소하는 사고자 및 관련자들은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회의에 참석한 해병대 2사단 12대대장 임요한 중령은 “국민, 지도층, 타군이 해병대를 부정적으로 보고 지적해도 ‘우리는 잘하고 있다’며 외부 인식을 거부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게 해병대”라며 스스로의 개혁을 강조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해병대의 ‘악’과 ‘깡’이 구타와 가혹행위에서 나온다면 전쟁 때는 필요 없는 군대”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가 된 해병대 2사단 예하부대를 소초 중심의 소규모 경계 부대에서 상륙작전 중심의 대부대로 전환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병대 2사단은 김포를 중심으로 한 해안과 강화도 등 도서 지역 경계임무를 맡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산재한 소초 단위 부대는 100여 개다. 이번에 총격사건이 일어난 1대대 소속 소초처럼 30여 명 정도의 병력이 1년 동안 제자리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해병 2사단장이 재임 기간에 한 번도 돌아보지 못하는 부대가 수두룩하다”며 “폐쇄된 공간의 소규모 부대는 장교들의 어지간한 열정이나 능력이 없으면 지휘 통제가 어렵다”고 말했다. 적은 인원으로 24시간 경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주임무다 보니 병사들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선임병들도 군기를 이유로 가혹행위를 하기 일쑤다. “2사단 소초 근무는 선임에겐 구타의 천국, 후임에겐 구타의 지옥”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김포 주변 경계임무는 병력이 많은 육군에 넘겨주고, 이곳의 해병대 병력을 통합해 본연의 상륙작전을 위한 대규모 훈련 부대로 만들면 악습이 개선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해병대 초급간부의 자질 향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해병대 병영문화 해결을 위해선 초급 간부의 질을 높여야 한다”며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는 장교 가운데 해병대를 지원하는 장교들이 해마다 줄고 있다”며 “특히 해병대 2사단은 초급 장교뿐 아니라 영관급에게도 기피지역”이라고 말했다. 임요한 중령도 “초급 간부의 자질이 부족하고, 부대원들을 지휘통제할 여건도 악조건”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군 당국은 이번 총기 사건과 관련해 김모 상병과 사건을 공모한 정모 이병에 대해 ‘상관 살해 및 군용물 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군은 또 해당 부대의 소초장 이모 중위와 상황부사관 한모 하사에 대해서도 관리소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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