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의 Wine&] 짝퉁 ‘라피트 로칠드’ 82년산 … 진짜 85년산 넣어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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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와인을 마신 후에 와인 병은 깨트려라’.

 최근 홍콩의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유행이다. 중국인들이 비싼 와인 빈 병에 싸구려 와인을 주입해 가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현상이다. 빈 병은 고급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나 이베이와 같은 경매 사이트를 통해 구한다. 미국 CNN방송은 “한 병에 5900달러에 달하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 82년산(사진)의 경우 빈 병 가격만 1500달러에 달한다”며 “일부 애호가들은 가짜 와인 제조를 막기 위해 와인을 마신 후 빈 병은 집에 가져와서 망치로 깨트린다”고 밝혔다.

 CNN은 15조원에 달하는 중국 와인시장에서 가짜 와인이 5%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비싸지만 맛이 달콤해, 상대적으로 가짜를 만들기 쉬운 아이스 와인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국 와인 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는 “중국에서 파는 아이스 와인의 80%가 가짜”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가짜 와인의 온상지로 지목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40년대 중국을 찾은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5일 동안 중국인에게 소설 쓰는 법에 대한 개인 과외를 해준 후, 대가로 받은 와인이 가짜였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중국 와인시장이 커지면서 가짜 와인을 만드는 방법도 더 정교해졌다. 진짜와 똑같은 레이블이나 코르크로 제조하는 것은 기본. 내용물까지 같은 브랜드의 와인을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예컨대 라피트 로칠드 82년산을 만들기 위해, 가격이 3분의 1도 안 되는 진짜 라피트 로칠드 85년산을 넣는 식이다.

 아예 대놓고 가짜 와인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호주 명품 와인 펜폴즈(Penfolds)의 짝퉁 벤폴즈(Benfolds), 라피트 로칠드(Lafite Rothschild)의 영문 철자 중 f를 p로 바꾼 라피트 로칠드(Lapite Rothschild) 등은 중국의 일반 와인숍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나라식품의 이민우 본부장은 “라피트 로칠드 측에서 중국의 해당 업체에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와인회사들도 짝퉁 와인 방지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내놓고 있다. 병마다 일련번호나 홀로그램을 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DNA를 넣어 스캐너로 식별할 수 있게 만드는 등 첨단 기술도 동원하고 있다.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경매에 나온 모든 와인의 상태와 진위를 확인하는 검사를 세 번씩 진행할 정도. 지난해 말 한국을 찾은 와인 전문가 클라이브 코츠는 “요즘 들어 가짜 와인을 구별해 달라는 초청을 많이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반 소비자들로선 가짜 와인에 대한 판별이 쉽지 않다. 특히 해외에서 구매한 경우라면 대책이 없다. 따라서 고급 와인의 경우 정식 경로로 들어온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싼 게 비지떡’이란 진리가 와인만큼 잘 적용되는 사례가 없다.

손용석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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