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머쓱하게 만든 김준규 총장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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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준규 검찰총장의 사퇴는 무책임하다. 김 총장은 어제 사퇴의 변(辯)을 통해 “합의가 깨지거나 약속이 안 지켜지면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를 통과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검찰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40여 일 임기를 남긴 시점에서 김 총장의 퇴진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을 수 있다. 1988년 2년 임기제가 도입된 이래 또 하나의 중도 사퇴라는 기록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김 총장이 임기제 취지를 크게 퇴색시킨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임기제는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국민과의 약속이다. 총장일지라도 진퇴(進退)를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 김 총장은 경찰과의 밥그릇 싸움에서 밀리자 조직의 불만과 반발을 상징하는 희생양의 길을 선택했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조직 이기주의에만 경도돼 총장직을 내던졌다. 평양감사도 아니고 검찰총장이 맘에 들면 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자리란 말인가.

 임명권자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다. 출국하기 전에 총장의 사표 제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만류했다. 그럼에도 김 총장은 “더 이상 때를 놓칠 수는 없다”며 강행했다. 순방 중 인사를 하기도 힘들다. 사정의 최고책임자 자리를 공석으로 만든 셈이다. 영(令)이 서지 않게 된 대통령의 머쓱한 얼굴을 단 한번이라도 떠올려 봤는가.

 김 총장은 당당하지도 못했다. 조직을 위해 중도에 물러난 ‘불운한 총장’이란 기억의 덧씌우기가 남으면 곤란하다. 2009년 8월 취임 이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라는 오명(汚名)이 쏟아졌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민간인 사찰 사건 등 수사는 부실했다. 그래도 부산저축은행 사건에서 “수사로 말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의지를 믿었다. 그 결과는 변죽만 요란했지 흐지부지 종착지를 향해 가는 모양새다.

 김 총장은 임기를 마치고 평가를 받았어야 했다. 국민은 검찰의 일대 쇄신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일이 그 첫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