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학전문 객원기자 양한광의 메디컬 뉴스] 대학병원의 잠 못 이루는 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모두가 잠든 오전 2시. 서울대병원 설비과에 근무하는 김기훈(36)씨는 전기 공급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원장치를 살핀다. 병원에는 산소호흡기 등 환자 생명 유지 장치가 많아 24시간 전기가 공급돼야 한다. 전기가 잠시라도 중단되면 상상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김씨는 무정전전원장치(UPS)와 비상발전기도 늘 점검해야 한다. UPS는 비상상황 때 한전의 전력을 끌어와 1초라도 정전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여름철은 전력 소모가 많아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다 보면 잠시 눈을 붙일 틈이 없다. 김씨는 4일에 한 번꼴로 밤 근무를 한다. 순번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말에도 밤 근무를 할 때가 많다. 김씨는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하고 몸은 힘들지만 내가 하는 일이 의료진 역할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병원은 밤낮이 따로 없다. 의사·간호사·의료기사·행정직·경비 등 수많은 직원이 밤을 새운다. 종합병원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아 다양한 직종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야간에 근무하는 직종이 의사·간호사나 항상 환자들이 머물고 대기하는 응급실·중환자실 업무만 있는 줄로 아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의료진과 함께 많은 직원이 꼬박 밤을 새운다. 공휴일과 주말, 설날·추석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학교병원의 경우 하루 500여 명이 밤을 지새운다. 전체 직원의 10분의 1이다. 이들이 1600여 명의 입원환자와 응급환자를 돌본다. 500명 중 의사는 150여 명이다. 응급실·중환자실 의사가 대부분이고 외과·내과·소아과 등 진료과 병동마다 한 명의 주치의가 대기한다. 나머지 350여 명은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이다. 시설·통신·경비·수송·전화교환 등 병원 인프라를 제어하는 사람이 야간에 없다면 수시로 생기는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 갑자기 전기가 끊기거나 물이 나오지 않거나 냉난방이 안 된다면 병원은 멈추고 말 것이다. 병원은 이들을 위해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야식으로 제공한다. 오후 7시부터 언제든지 가져가 먹을 수 있다.

 병원의 최일선에는 의료진이 포진하고 있지만 여러 분야 직원들이 뒤에서 묵묵히 밤을 밝히기 때문에 의료진이 돋보이는 것이다.

양한광 서울대 의과대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위암센터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