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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불 화살’ 셰허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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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오행(五行)에서 물은 불을 이긴다(水克火). 셰허가 이세돌의 천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세계대회 결승전은 심장이 강한 자가 이겨왔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세돌 9단(오른쪽)은 춘란배 결승에서 불처럼 뜨겁고 대담한 수법으로 얼음처럼 냉정한 셰허를 허물어뜨렸다. [한국기원 제공]


불같이 뜨거운 이세돌, 물처럼 냉정한 셰허. 불과 물의 전쟁이라 할 제8회 춘란배 세계선수권 결승전은 불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대1로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30일 중국 충칭(重慶) 황관호텔에서 열린 결승 3국에서 이세돌 9단이 이겨(214수·백 불계승) 종합 전적 2대1로 우승컵을 쟁취했다. 우승상금은 15만 달러.

셰허 7단의 흑1은 중앙 대마를 노린 승부수. 그러나 이세돌 9단은 백6, 10, 12의 수순으로 죽어 있던 백돌을 살려내 승부를 결정짓는다. 중간에 한 수 교환해 둔 백8이 절묘해(손 빼면 9 자리 밀고 들어가 흑의 응수가 곤란해진다) 대마는 공격당하지 않는다.

 이번 우승은 중국 랭킹 2위인 셰허 7단이 이세돌 9단의 천적이자 한국 기사 킬러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 1위 이세돌은 이번 결승전 전까지 셰허에게 1승4패로 열세였다. 한국 2위 최철한 9단은 4전4패. 세계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셰허에게 한국의 최강자들이 이토록 형편 없이 밀린 이유는 ‘상극의 기풍’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세돌-최철한은 공격 성향이 강하고 불처럼 뜨거운 기풍인 데 반해 셰허는 수비에 능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기풍을 지녔다. 그 냉정한 받아치기에 이세돌 9단도 번번이 허를 찔렸다.

 그러나 세계무대 결승전은 달랐다. 지난달 27일의 1국에선 얼음장 같던 셰허가 약간 동요한 듯 이세돌의 강펀치에 정면으로 맞서왔다. 시종 격렬한 전투를 전개한 끝에 169수 만에 흑을 쥔 이세돌의 불계승. 난전이라면 셰허는 이세돌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2국에서 셰허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해설을 맡은 진시영 4단의 표현에 따르면 “경악할 만한 냉정함”으로 국면을 단순화시켜 19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중국 언론도 최강의 적수 이세돌의 강수를 부드럽게 흘려보낸 셰허의 냉정한 형세 판단을 극찬했다.

 이튿날 속개된 3국은 이리하여 불과 물의 전쟁이 됐다. 돌을 가려 셰허가 다시 흑. 초반전은 2국과 똑같이 흘러가다가 셰허가 29수에서 방향을 틀었고 첫 접전의 결과는 백의 실리와 흑의 대모양으로 절충됐다. 흑이 약간 좋다는 평이 나왔다.

이세돌은 흑의 대모양 깊숙이 뛰어들어 타개에 성공했으나 형세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세돌의 불같은 강수는 끝없이 이어졌고 얼음이 녹듯 바둑은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7집 반의 큰 덤이 불안해지자 셰허는 대마 공격에 최후의 승부를 걸었으나 이세돌의 절묘한 응수에 가로막혔고 얼마 후 항복을 선언했다. 이세돌 9단은 올 초 BC카드배 우승에 이어 두 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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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現] 한국기원 바둑기사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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