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다고, 무섭다고 산부인과 가기 미루다가 평생 눈물 흘리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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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김미연(가명·35·서울 서초구)씨. 불임의 원인을 알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그녀는 의사로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자궁에 큰 혹(자궁근종)이 여럿 붙어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혹이 너무 커 자궁을 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며 “몇 년 더 일찍 왔더라면 혹만 떼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통증과 출혈이 잦았던 자궁의 ‘경고’를 무시한 자신의 무지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며 가슴을 쳤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수많은 여성이 자궁 통증과 비이상적인 신호를 느끼면서도 산부인과 검사를 꺼려 병을 놓친다. ”고 말했다.

여성은 생리를 시작한 시점부터 자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왼쪽)가 젊은 여성이 걸리기 쉬운 자궁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지난해 3만여 명 자궁 떼는 수술 받아

우리나라 여성의 자궁이 위험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대표적인 자궁질환을 조사한 결과 자궁근종은 약 26%, 자궁내막증은 약 39% 늘었다. 불과 5년간의 추이를 본 통계다.

 자궁질환으로 자궁을 떼어내는 여성도 늘고 있다. 지난해 자궁 적출술을 받은 환자는 2만8925명에 이른다. 연령층도 낮아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김병기 교수는 “ 1980년대만 해도 청소년에게선 자궁 관련 질환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꽤 많은 중·고등 학생이 이런저런 생식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김병기 교수는 “자궁 건강이 나쁘면 아이가 작거나 기형으로 태어날 확률이 높다”며 “최근 늘어나는 불임도 근본 원인이 자궁질환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근종·내막증 가장 흔해 … 젊은 여성에도 빈발

자궁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흔한 질환은 자궁근종이다. 피부에 사마귀처럼 자궁 벽에 혹이 여러 개 생긴다. 성인 여성 세 명 중 한 명꼴로 자궁근종이 발견된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박문일 교수는 “여성호르몬의 과다 분비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원래 30~45세에서 빈발하지만 최근 고등학생·대학생 등 젊은 여성에게도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자궁근종이 있으면 지혈이 안 돼 월경 시 출혈량이 많다.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도 있다. 통증은 근종이 커지거나 개수가 많아지면 나타난다.

 자궁내막증은 생리혈과 관련이 있는 질환이다. 자궁내막이란 착상한 수정란에 영양을 공급하는 일종의 영양공급원이다. 임신이 안 되면 월경을 통해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이 중 일부 내막세포가 몸 안에 남아 난소나 골반 벽에 붙어 자란다.

자궁내막증은 난자가 흘러들어오는 길을 막아 임신을 방해하기도 한다. 성인 100명 중 7명꼴로 나타나고, 평소 또는 부부관계 시 통증을 느낀다.

 자궁경부암은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이다. HPV(인유두종바이러스)에 의해 옮는다. 성관계로 감염되지만 간혹 목욕탕, 또는 다른 매개물질을 통해 옮을 수 있다. 자궁경부암은 1기에 치료하면 95%에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생활을 시작한 여성은 정기 검진이 필수다.

 자궁내막암도 급증했다. 최근 14년 사이 약 6배 증가했다. 자궁내막암은 흔히 선진국형 암이라 불린다. 비만·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 폐경이 늦거나 폐경 후 에스트로겐 보충요법을 하는 여성에게 발병 위험이 높다. 김병기 교수는 “자궁내막암 위험군은 질 초음파 등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이른 초경과 만혼이 원인

자궁질환이 느는 이유는 뭘까. 먼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아진 점을 꼽는다. 박문일 교수는 “스트레스는 뇌의 자궁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위에 비정상적인 신호를 준다. 자궁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아 생리주기가 일정치 않게 되고, 그 결과 각종 자궁질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자궁 주변 골반통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주웅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자궁수축물질이 분비돼 통증을 일으킨다. 골반 염증도 생겨 만성 통증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빠른 초경도 원인이다. 박문일 교수는 “자극적 영상, 또는 고급문화에 빨리 노출될수록 여아의 여성호르몬 분비 시기가 빨라진다. 이른 시기부터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면 자궁질환 위험도 커진다”고 말했다. 만혼(晩婚) 역시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을 늘려 자궁질환 위험을 높인다.

 성관계 연령이 낮아진 점도 주요 원인이다. 김병기 교수는 “바이러스 감염이 주요 원인인 자궁경부암에 걸리는 여성의 나이가 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궁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정기검진을 받도록 해야 한다. 박문일 교수는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바꿔 미혼 여성에게 거부감을 줄이고, 10대와 20대에게도 산전 검사의 중요성을 알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배지영 기자
사진=프리랜서 신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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