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구언<求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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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당나라 덕종(德宗)이 사냥을 나갔다가 평민 조광기(趙光奇)의 집을 방문해 “백성들은 즐거운가(百姓樂乎)?”라고 물으니 “즐겁지 못합니다(不樂)”라고 대답했다. “올해는 농사도 잘된 편인데 왜 즐겁지 못한가?”라고 묻자 “조정의 영을 믿을 수 없다. 조세가 너무 무겁고 관료들의 주구(誅求)가 심하다”고 비판한 후 “깊은 구중궁궐에 계시기 때문에 모르시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머쓱해진 덕종은 조광기의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북송(北宋)의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 233권)』에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덕종을 비판했다. 백성들의 질고가 전해지지 않은 것은 주위의 아첨 때문이니 그들을 처단해 정사를 새롭게 했어야 하는데, 조광기 집 세금만 면제해 주었다는 것이다. 사마광은 “어찌 억조나 되는 민중이 다 천자에게 스스로 말하게 해서 집집마다 다 면세해 주겠느냐?”고 비판한다.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눈앞의 현상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이다.

 아래의 목소리가 위로 통하지 않으면 위기가 닥친다. 그래서 ‘말을 구한다’는 뜻의 구언(求言)제도가 생겼다. 천재지변이 있거나 흉년이 들면 임금은 하늘이 자신을 꾸짖는다는 생각에서 아래에 구언한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는 것이다. 태종이 재위 3년(1403) 8월 수재와 한재가 겹치자 구언하는데 아주 구체적이었다.

 “정사에 잘못이 있고 제멋대로 행해지는가? 재판이 공정하지 못해 억울한 것이 펴지지 못하는가? 부역(賦役: 세금)이 고르지 못해 유망(流亡: 집을 잃고 떠돎)이 그치지 않는가? 충(忠)가 사(邪)가 섞여 참소와 아첨이 행해지는가? 기강이 서지 못해 형벌과 상이 문란한가? 변방 장수가 어루만지지 못해 사졸들이 탄식하고 원망하는가? 간사한 아전이 교묘하게 법을 농단해 백성들이 근심하고 탄식하는가?(『태종실록』 3년 8월 21일)”

 구언에 응해 올리는 상소가 응지상소(應旨上疏)인데, 태종이 “쓸 만한 말이면 즉시 채납(採納)하겠고, 혹 맞지 않아도 관대하게 용납하겠다”라고 말한 것처럼 응지상소는 어떤 말을 써도 처벌하지 않았다.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군자가 옳은 말을 좋아하면/난이 곧바로 그치겠네(君子如祉/亂庶遄己)’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소통은 중요하다. 현재의 많은 문제는 위의 생각을 아래에 이해시키는 것을 소통이라고 여기는 데 있다. 소통은 아래의 말을 듣는 것이다. 윗사람일수록 필요한 것은 귀지 입이 아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