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찌질이’도 행복한 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대학을 졸업한다고 앞날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등록금이 비싸면 안 다니면 그만이지 왜 꼭 반값 등록금 투쟁까지 해야 하느냐는 이들이 있다. 빌 게이츠도, 서태지도, 백청강도 대졸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이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에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 것이 아닌가. 현실은 그런 영웅신화와는 다르다. 많은 통계 자료가 학벌은 연봉·행복지수·암유병률·사망률까지 차이 나게 하는 변수라 지적한다. 물론 대학 진학률이 80%로 수년 만에 갑작스럽게 증가한 상황이라 앞으로도 대학 졸업장이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상담실이나 강의실에서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과 만나면 고3 학생들보다 더 심각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른바 일류대를 졸업해도 원하는 취직이 쉽지 않기 때문에 스펙을 쌓기 위해 엄청난 노력도 한다. 과거처럼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하는 이는 많지 않다. 부모들도 불안하다. 대부분은 자신의 노후 보장은 뒷전인 채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자녀들의 등록금과 사교육 부담에 등이 휜다. 가르치는 교수도 편하지 않다. 강의 평가제에 논문 등재율, 사회 참여도 등으로 빡빡하게 점수를 매기는 데다 학생 모집과 취업 소개에 대한 부담도 크다. 스트레스로 교수를 그만두고 싶다고 상담하러 온 이도 적지 않았다. 강사들은 더하다. 오랫동안 공부한 것이 무색하게 교통비·식비 정도의 강사료를 받는 자리나마 없어 교수 비위를 맞추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사회에 대한 분노와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는 이들과 면담을 한 적도 많았다.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른 고학력자의 인플레 현상과 부실 대학의 과잉이 근본 이유일 수 있다. 중소기업이나 농어촌은 인력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니까. 그러나 학력에 따라 삶의 질이 달랐던 사회에서, 자기 자녀에게 공부하지 말고 아무 일이나 하라는 말을 쉽게 하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부모가 능력이 없어도 장학금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사회와 단순노동의 비정규직으로 인생이 끝나는 사회는 많이 다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험한 아르바이트를 해도 결국 성공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케이스가 많다면 대학에 그리 연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치료했던 스웨덴 사람은 고졸이었으나 다국적기업의 사장으로 일하다 40대에 양치기가 되겠다고 고향의 목장으로 돌아갔다. 북유럽 사람이라 가능한 얘기리라.

부의 세습이 고착돼 계층의 수직 진입이 힘들어진 터라 부모 돈이 없으면 꼼짝할 수 없는 현실이 젊은이들을 분노하게 하는 게 아닐까. IMF를 거친 때문인지 의외로 많은 20대가 X세대(현재 30대)나 386세대에 비해 더 현실적이고 근면한 것 같다. 문제는 학업을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른바 인력 대비 생산성이 높은 효율적이고 ‘럭셔리’한 대기업에 기회가 집중되다 보니 사회 초년생을 위한 다양한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아프리카건 중남미건 떠나겠다는 젊은이도 많지만 국가 정책이나 기성세대가 그들의 담대함을 북돋워 주는 것 같지도 않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소수를 위해 나머지는 희망 없이 들러리나 서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까. 가수 윤종신은 자신의 콘서트 말미에 “찌질이도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다. 깊이 공감되는 얘기다.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