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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지사의 ‘등록금 없는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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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찬호
사회부문 부장대우

‘21세기 정보 시대의 국가와 지역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고급 인력 양성.’

 1998년 3월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문을 연 강원도립대학의 설립 이념이다. 주문진수산고등학교가 이 대학 전신이다. 주문진수고는 수산 인력을 양성하는 학교였다. 그러나 어업이 쇠퇴하면서 학교 존립이 문제가 됐다. 그러자 지역과 주민은 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처음 대학 설립을 약속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87년 평민당 후보로 대선에 나선 DJ는 이곳에 대학 설립을 공약했다. 그의 낙선으로 공약은 없었던 일이 됐다. 88년에는 지역 주민 2500여 명이 서명해 국회에 대학 설립을 청원했다. 91년 3대 도의회 의원에 당선한 이 지역 출신 정인수씨 등은 본격적으로 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97년 11월 대학 설립인가가 났고, 이듬해 개교했다. 그러나 이 대학은 설립 이념처럼 국가와 지역발전을 담당할 고급 인력을 기르지 못했다. 개교 이래 6803명이 입학했지만 졸업한 이는 절반이 조금 넘는 3474명(51%)에 불과했다. 다른 대학 편입학을 위해 이 대학을 중간 경유지로 활용했거나 비전이 없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강원도는 이런 도립대학을 ‘등록금 없는 대학’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수 학생을 유치해 명문대학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학생 1인당 연간 296만4000원인 등록금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감면해 2014년에는 전액 면제한다는 것이다. 감면하는 등록금은 강원도가 지원한다. 계획대로 할 경우 2014년에 24억6000만원을 지원해야 한다. 이 대학에 해마다 65억원 내외의 전입금을 내는 강원도로서는 재정 부담이 그만큼 늘게 됐다. 그러기에 이 방안을 처음 검토한 강원도 관계자는 ‘불가’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문순 도지사는 ‘등록금 없는 대학’ 안을 택했다. 그는 “‘반값 등록금’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고민했던 것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며 “많은 부담을 지지 않아도 등록금을 인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지사는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지만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말이 의미하듯 다분히 정치적이란 얘기가 나온다. 최 지사의 결정이 민주당의 ‘반값 등록금’과 궤를 같이하거나 ‘2012 총선용’이란 것이다. 12월 도의회 정례회의에서 관련 예산의 확보 여부가 내년 총선에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대학 입학정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수보다 많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을 없앤다고 도립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짜라고 비전이 없는데 우수한 학생이 올까? 그보다 우수한 교수 확보와 구조조정 등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대학 만들기가 먼저다.

 이광재 전 지사는 재임 시절 수산 관련 분야를 특화해 도립대학을 인근 국립대학과 통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검토했었다. 재정자립도 최하위권인 강원도가 대학에 계속 지원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어느 것이 합리적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찬호 사회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