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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사이버테러에 이용되는 ‘봇넷’ 600만 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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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서종렬
한국인터넷진흥원장

미 연방수사국(FBI)에 이어 중앙정보국(CIA)까지 해킹당했다. 얼마 전에는 각국 정부의 경제 관련 기밀이 모이는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의 보안망이 뚫렸다. 세계 187개 회원국의 금융데이터 등 민감한 정보를 갖고 있는 IMF의 전산망이 해킹당한 것은 글로벌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1998년 2월 미국이 이라크에 폭격을 가하고 있던 시기에 펜타곤 컴퓨터에는 가장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이 진행되었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이버 도발로 간주했다. CIA와 FBI의 최고보안 전문가들이 투입됐지만 해커들은 한 달 내내 보란 듯이 국방부 컴퓨터를 헤집어 놓았다. 결국 범인이 고등학생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수퍼파워인 미국의 심장부, 그것도 최고의 정보기관과 전쟁을 총괄하는 부서를 철저하게 유린한 사건이었다.

 정말로 과대망상증을 가진 해커들이 작정하고 사고를 친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질서를 붕괴시키는 것은 물론 개인의 삶까지 파괴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간단할지 모른다.

최근 해킹의 흐름은 초창기 지적 호기심이나 실력 과시 차원, 기업정보나 은행을 타깃으로 금융수익을 올리던 차원에서 한 단계 진보하고 있다. 음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이버공격은 최근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커들의 타깃이 국가 기간산업이나 정치인 등으로도 향하고 있다.

 2008년 4월 미국에서 한 해커가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웹 사이트 취약성을 공격해, 방문자들을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사이트로 옮겨가도록 했던 사건이 있었다. 선거의 판도까지 바꿀 수 있었던 해킹 사건이었다.

 최근 유명인사들의 소통도구가 된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해킹 대상이 되고 있다. 소통도구인 SNS를 통해 엉터리 허위의 글을 등록하게 되면, 나중에 해킹 사실이 알려진다 하더라도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해킹의 위험에 대해 다소 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네트워크사회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2008년 유럽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600만 대의 봇넷(스팸메일이나 악성코드 등을 전파하도록 하는 악성코드 네트워크)이 존재한다. 이 같은 봇넷을 동원해 사이버공격에 나선다면 한순간에 상황이 종료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결국 인터넷의 최대 장점인 개방성과 확장성이 아이러니하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대통령 선거나 국가적으로 큰 이슈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에 디지털 집계장치 등에 사이버테러가 발생하게 된다면 역사가 뒤바뀌는 엄청난 일도 벌어질 수 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사이버세계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듯, 보이지 않는 위협은 현실의 테러리스트보다 더 무섭고 인류를 위협하는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더 치밀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사이버전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사이버 안보체계를 더욱 견고히 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으면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류를 공격해 전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악몽 같은 공상과학 속 ‘최후 심판의 날’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서종렬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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