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문서가 현실로” 뒤숭숭한 광주시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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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중순 광주광역시청에 괴문서가 돌았다. 사업비가 982억원에 이르는 총인(TP) 처리시설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서였다. 내용은 ‘심사위원이었던 일부 공무원들이 특정업체 선정을 도왔다. 이들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거였다. ‘시청 내 핵심 4인방이 시정(市政)을 좌지우지할 것이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달 초 광주시가 시공사로 선정된 컨소시엄에 설계심사 점수 1위를 준 심의위원들을 해촉하자 “괴문서 내용이 현실이 됐다”며 시청 안팎이 크게 동요했다.

 ◆심의위원 해촉=300억원 이상 공사의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발주 때는 설계심의분과위원회가 심의를 한다. 위원회는 당연직인 시청 건설방재국장·건설행정과장을 포함해 모두 50명으로 구성된다. ‘내부 공무원을 과반수 확보해야 한다’는 건설기술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광주시청 공무원 26명과 교수 등 외부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됐다. 광주시는 공무원 위원 24명(당연직 2명 제외)으로부터 사퇴서를 받아 이 가운데 7명을 1일 자로 교체했다.

 이 무렵 “시장 측근들이 밀었던 컨소시엄이 탈락하자 보복에 나선 것”이란 말이 돌았다. ‘시장 측근 일부가 A컨소시엄을 밀었다. 이 컨소시엄은 설계와 응찰 가격 등 여러 면에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시공사로 선정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반란(?) 표가 나오면서 대림산업 컨소시엄이 공사를 따냈다’는 게 소문의 요지다. 상당 부분이 괴문서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한다.

 강운태 시장이 측근들에게 자신들의 입맛대로 ‘시장의 의중’을 팔 여지를 남겨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시청 안팎에선 “저마다 실세라고 하니, 누가 진짜인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들린다.

 시청 내 전·현 실세들 간 알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시공사로 대림산업 컨소시엄이 선정된 것은 5월 초. 심사에서 대림산업 컨소시엄은 96.74점으로 1위를 했다. 금호산업 컨소시엄(96.23점), 현대건설 컨소시엄(91.88점), 코오롱건설 컨소시엄(89.81점)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 심의에는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16명(공무원 9명)이 참여했다. 이들 중 5명이 경질됐다. 경질된 또 다른 2명은 심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시 고위 간부 B씨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시장 때 실세였던 B씨는 괴문서에 ‘핵심 4인방’ 중 한 명으로도 거론됐다. 때문에 ‘현 실세 간부가 B씨를 견제하기 위해 본때(심사위원 해촉)를 보여 준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로비설도 터져 나왔다. 턴키 공사는 입찰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아 설계 점수가 중요하다. 진선기 광주시의원은 “광주시 간부가 ‘심의위원들에 대한 업체들의 치열한 접촉 시도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며 그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광주시는 “현행 턴키 설계 심사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 탓에 심사위원이었던 공무원들이 부담을 느꼈고 이들이 자진 사퇴해 교체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심사위원 수가 50명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심사 20일 전에 공고하도록 돼 있는 등 업체들의 로비에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심사위원이 미리 노출되면서 겪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며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유지호 기자

광주 총인처리 시설 공사 계획

▶ 위치 : 광주시 서구 유촌동 제1하수처리장과 광산구본덕동 제2하수처리장 내
▶ 규모 : 하루 72만㎥ 처리(제1하수처리장 60만㎥, 제2하수처리장 12만㎥)
▶ 공사 기간 : 2011년 5월∼2012년 9월
▶ 사업비 : 982억원(국비 491억원, 시비 491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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