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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調絃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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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게임이론의 대부인 천재 수학자 존 내시(John Nash)는 스무 살 되던 1948년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이듬해 ‘비적대적 게임에서의 균형설’을 창안하는 등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서른을 갓 넘으면서 정신분열병에 걸리고 만다. 그는 ‘소련 스파이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환상에 쫓기고, ‘세상을 구할 임무를 띤 요원’ ‘남극의 제왕’이라는 식의 과대망상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동료 교수들의 관심 덕에 병을 이겨낸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비협조적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2002년 개봉한 ‘뷰티풀 마인드’는 이런 내시의 감동스러운 삶을 다룬 영화다.

 내시처럼 정신분열병을 극복한 사람들은 숱하다. 정신분열병은 불치의 천형(天刑)이 아니란 얘기다. 문제는 잘못된 병명 탓에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이 심하다는 점이다. 정신분열병은 말 그대로 ‘정신이 분열됐다’거나 ‘마음이 나눠졌다’는 뜻으로 읽히니 우선 환자 본인의 절망과 공포감이 어떠할지는 불문가지다. 환자를 위험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여기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부추기는 데도 한몫한다. 이러니 환자가 ‘커밍아웃’을 꺼리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런 정신분열병 병명이 조만간 사라질 모양이다. ‘조현병’으로 바꾸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이달 중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고 한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한다’는 뜻이다. 휴정 서산대사가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인용해 쓴 ‘조현지법(調絃之法)’에 보인다. 부처가 거문고 줄 고르는 법에 비유해 “정진도 너무 조급히 하면 들떠서 병나기 쉽고, 너무 느리면 게을러지게 된다”고 제자를 가르쳤다는 내용이다. 현악기의 줄이 적당히 긴장을 유지해야 제 기능을 발휘하듯 인간의 정신도 적절하게 조율돼야 제 기능이 유지되는 법이다. 이런 뜻이 담긴 조현병이란 병명이 참으로 절묘하다. 50만 정신분열병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사회의 편견을 없애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대책 없이 ‘반값’ ‘무상’ 정책을 내지르는 정치인이나 뇌물·향응에 빠진 후안무치의 공무원들도 ‘조현’이 필요한 것 같다. 그야말로 정신줄 놓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의 정신줄을 단단히 조율해야 한다. ‘조현병’이 재발하면 치료비가 7배나 더 든다니 초기에 확실히 잡을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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