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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자기폭풍이 지구 덮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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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콘텐츠 본부장

1859년 9월 1일 정오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캐링턴은 태양 표면에서 이례적으로 큰 폭발을 관측했다. 여기서 쏟아져 나온 고에너지 입자의 폭풍은 18시간 만에 지구에 도착, 지구를 둘러싼 자기장을 뒤흔들었다. 이 탓에 일어난 강력한 자기 폭풍은 유럽과 북미의 모든 전신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전신용 철탑은 불꽃을 일으켰고 전보 용지는 저절로 불이 붙었다. 태양 입자의 세례를 받은 대기권에는 신비한 오로라가 충만했다. 북미의 로키 산맥 상공에 생성된 오로라는 너무나 밝아서 금광 광부들이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침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링턴 이벤트’라 불리는 이 사건은 지금껏 기록된 지자기 폭풍 중 가장 위력이 큰 것이다. 남극의 얼음층을 조사한 결과 이 정도 강력한 자기폭풍은 약 500년 만에 한 번씩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50년 만에 한 번씩 일어나는 정도의 자기폭풍도 인공위성의 기기를 고장 내고 전파 통신을 방해하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내비게이션을 못 쓰게 만들고 광범위한 지역에 정전을 유발할 수 있다. 1989년 3월 13일 발생한 자기 폭풍은 캐나다 퀘벡 주민 600여만 명을 9시간 동안 전기가 끊긴 채 살게 만들었다.

 2009년 1월 21일 미국과학아카데미는 ‘심각한 우주 기상 사건들-사회·경제적 충격에 대한 이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한다. 1921년 발생했던 자기폭풍을 모델로 삼아 피해를 추산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대형 변압기 350개가 영구적인 손상을 입고 약 1억 3000만 명에게 가는 전력이 끊길 위험이 있다. 몇 시간 내로 수도망이 마비되고, 12~24시간 내로 상하기 쉬운 음식과 약품이 못 쓰게 되며 냉난방 장치, 하수 처리장, 전화 서비스, 연료 재보급 등이 작동을 멈추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사태는 100년 뒤에 일어날 수도 있고 100일 뒤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대책은? 신뢰할 만한 예보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태양 표면에서 커다란 폭발이 관측되는 경우 경보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폭풍이 발생하기 하루 이틀 전에 대비태세를 취할 수 있다. 9일 로이터통신은 지난 3일 폐막한 세계기상기구 총회의 소식을 전했다. 189곳의 회원 기구들이 우주의 기상을 예보하기 위한 국제협조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지구 전체에 미치는 위험 앞에서는 단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류인가 보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콘텐츠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