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보건복지부 장관, 정권 성패 좌우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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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보건복지부는 16개 부(部) 중에서 대표적인 민생부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정부정책이 전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복지지출은 예산의 28%에 달하는데 보건복지부 정책의 대부분이 이런 예산과 관련이 있다. 질병관리본부 등 소속기관이 11개, 국민연금공단 등 산하 공공기관이 15개다. 관할하는 업무가 그러하다 보니 역대로 보건복지부는 이해집단의 갈등에 휘말려 왔다. 의사와 한의사, 의사와 약사, 약사와 소비자 간의 이해대립 등이다.

 그러므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해집단으로부터 독립해 국민 입장에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가복지정책을 개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역대로 적잖은 장관이 이런 조건보다는 정치적 동기로 임명됐다. 김영삼 정부 이후 21명의 장관 중 정치인이 13명으로 다른 경제·사회부처에 비해 비율이 높다. 대통령이 이 자리를 정치적인 목적에 활용하기 쉬운 직책으로 생각한 측면이 강한 것이다. 대통령들은 대선주자에게 ‘장관’이라는 경력관리 기회를 주거나 자신과 가까운 의원에게 감투를 주는 식으로 이 자리를 이용하곤 했다.

 물론 정치인이라고 해서 장관을 맡아선 안 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뛰어난 정치력을 가진 정치인이 정책을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장관이 지역구나 정파를 초월해 국민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그릇을 갖추어야 한다. 경력을 쌓기 위해 거쳐가는 게 아니라 실적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진수희 장관은 정권의 2인자라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핵심 측근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경선캠프 대변인을 지냈다. 그는 사회학 박사로서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정무분과에서 활동했다. 그가 보건복지분야 적임자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번 일반의약품 수퍼 판매 파동에서 그는 서울 지역구의 약사회에 약국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약속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보다는 자신의 지역구 득표활동에 더 신경을 쓴 것이다. 이런 일은 ‘정치 장관’의 대표적인 폐해로 기록될 것이다. 김대중·김종필 연합 때는 자민련 몫으로 들어온 장관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두 달 만에 경질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선주자를 경력관리용으로 임명했는데 그의 장관직 수행이 생산적이었다는 평가는 부족하다. 김영삼 대통령 때 임명된 어느 정치인 장관은 부인의 수뢰혐의로 물러나야 했다.

 장관직을 대통령의 ‘자리 봐주기’로 생각하는 한국 정치의 잘못된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중요한 민생부서라서 특히 그래야 한다. ‘복지국가’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보건복지부는 더욱 더 민생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양극화에다가 국민의 건강증진과 노후복지에 관련된 민감한 정책이 보건복지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 정책은 대선에서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여(與)든 야(野)든 집권 후에도 보건·복지정책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면 정권의 성공을 보장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