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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쇼핑몰마다 ‘신종 삐끼’ 성업중

중앙일보

입력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어린이들 사이에 최고 인기를 끌었던 ‘해리포터’시리즈를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사려던 사람들은 “반스 앤 노블(Barnes and Noble)에서는 10달러 더 싸게 팝니다”라는 팝-업(갑자기 돌출하는) 메시지에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아마존을 사랑하는 팬이라도 10달러라는 가격 차에 주저없이 반스 앤 노블 사이트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한 결과.

지금 미국에서는 전자상거래 사이트의 상품 가격을 실시간(리얼타임)으로 체크해 가장 싼 가격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업체들이 성업중이다. 일명 ‘가격 정보 스파이 업체’. ‘아이추즈 닷 컴(Ichoose.com)’ ‘클릭 더 버튼 닷 컴(Clickthe-button.com)’ 등이 대표적이다. 이용 방법도 손쉽다. 이들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기만 하면 싼 가격 정보를 수시로 제공받을 수 있다.

이들은 ‘로봇’ ‘스파이더’라 불리는 소프트웨어로 수천개 사이트를 이 잡듯이 뒤져 가격정보를 수집한 뒤 고객이 특정 제품을 구입하려고 클릭하려는 순간 “더 싸게 파는 곳이 있다”고 알려준다. 이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들은 말하자면 인터넷상의 ‘삐끼’인 셈.

게다가 위장·잠복·이중 계약 등 산업 스파이 못지않은 전술이 이용된다.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가격정보 제공업체가 자신들의 사이트를 휘젓고 다닌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일반 고객과 다름없는 절차를 거쳐 사이트를 방문하니 전문가인 사이트 운영자라도 누가 진짜 고객이고, 누가 가짜인 ‘로봇’인지 따질 도리가 없다. 또 가격 정보가 전자상거래 업체의 서버를 통하지 않고 고객의 컴퓨터 화면에 곧바로 뜨기 때문에 더더욱 속수무책이다. 기껏 광고·판촉으로 손님을 끌어다 놨더니 엉뚱한 가격정보업체가 끼어들어 다른 업체 선전만 해주는 꼴이 되고 있는 셈.

이제 인터넷은 실제 상점보다도 더 치열한 가격 정보 훔치기, 손님 빼돌리기 전쟁이 시작됐지만 ‘훼방꾼’들을 막을 방도는 없다. 방지책이라고는 고작해야 가격 표시 위치를 자주 변동시키는 등 웹사이트 디자인을 바꿔 주는 것뿐이다.

게다가 ‘아이추즈 닷 컴’같은 업체는 전자상거래 업체들을 대상으로 “당신들의 싼 가격을 다른 사이트에 접속한 고객에게 알려줄 테니 거래가 성사되면 물건값의 5∼30%를 달라”고까지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이들 가격정보 업체에 등록한 고객들에게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특별 할인까지 해주고 있다.

또 경쟁업체로 많은 고객들이 옮겨가면 이문이 적게 남더라도 특정 상품을 싸게 파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격 정보 업체를 푸대접할 수는 없다. ‘아이추즈 닷 컴’의 최고 경영자 랜스 커닝햄이 밝혔듯이 슬쩍 싼 값을 알려주는 것처럼 손님 빼오는 데 저렴한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겁 먹어야 할 곳은 전자상거래 업체뿐 아니다. ‘아이큐오더 닷 컴(IQOrder.com)’은 핸드폰 등 무선기기를 통해 가장 싼 곳을 알려 준다. 상점에 전자제품을 사러 들어가는 순간 “텔레비전은 다른 곳이 더 싸다”며 귀뜸해 주는 식이다. 인터넷 업체들의 가격 비교뿐 아니라 실제 상점의 가격 비교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상인들은 이제 ‘IT(정보통신)삐끼’를 막기 위해 손님 몸수색을 하고, “핸드폰은 두고 가게에 들어와 주십시오”라는 간판을 내걸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홍수현 기자 / goodbuy 9호 (2000.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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