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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동물 치료하다 사람 골병든다…애완동물에도 사치품세금(부가세)내라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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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정희(54)씨는 복실이(시츄ㆍ4년)와 공원을 산책했다. 이 때 개의 뒷다리 발톱이 돌 뿌리에 걸려 부러졌다. 인근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1바늘 봉합 수술과 진통제 주사, 드레싱 처치, 하루치 약을 처방받았다. 하루걸러 한 번씩 3번을 더 갔다. 치료비로 14만원을 지출했다. 이씨는 “말 못하는 동물이라 병원부터 찾았는데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심숙희(32)씨는 정이(요크셔테리어ㆍ10년)의 복부에 혹이 생겨 이를 제거하려고 병원을 찾았다. 혈액 채취와 엑스레이를 찍는데만 20만원이 들었다. 수술비와 치료비를 합치니 80여 만원이 나왔다. 심씨는 “보험도 없고 어느 병원이 싼지도 모르니까 수의사 말대로 진료비를 냈다”며 “의료 수가를 비교할 수 없어 속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출처=중앙DB]

애완동물 400만 가구 시대다. 3~4인 가족을 기준으로 했을 때 1000만여 명이 애완동물과 함께 생활한다. 그런데 진료비가 만만찮다. 여기에 7월부터는 진료비에 부가가치세까지 얹어진다고 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들은 “개 치료하다 사람 골병든다”고 말한다.

◇진료비 ‘쉬쉬’=서울시내 동물병원의 진료비는 최고 40배까지 차이 난다(2009년 한국소비자연맹). 동물병원 301곳에서 22개 항목에 대해 진료비를 조사한 결과다. 드레싱비의 경우, 서울 서대문ㆍ마포ㆍ은평구의 한 동물병원에서는 4만원이지만 같은 지역의 다른 병원에서는 1000원이었다. 각 병원들이 진료비를 게시하지 않아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그래서 병원 진료비는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애완동물에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의료 수가에 대한 매뉴얼도 없다. 수의사가 책정하는 데로 진료비가 매겨진다. 동물협회단체들은 의료 수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적정 진료비를 책정하던지, 각 병원의 진료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한수의사회는 독점규제및공정거래법과 협회 회원들의 반발로 진료비를 공시하는 게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대한수의사회 최재용 팀장(수의사)은 “(1999년 동물의료수가제도가 폐지된 이후) 소비자의 불만이 잇따라 제기돼 체계를 만들려고 했지만 공정위가 가격 담합의 우려가 있다며 이를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한 지부에서 진료비를 두고 과당경쟁이 일어나 예방접종 수가에 대해 논의했는데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물었다”고 말했다.

공정위 카르텔총괄과 송상민 과장은 “의료 수가 제도는 가격 담합에 이용될 소지가 있지만 협회가 정식으로 논의를 요청한다면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정보 제공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되면 협회가 나서 중요정보 고시제도를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수의사협회 최 팀장은 “회원 각각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동의를 받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동물단체 관계자는 “결국 의료 수가를 두고 서로 떠넘기는 모양새여서 애완동물 주인만 봉”이라고 지적했다.

◇애완동물이 사치품이냐=애완동물 진료비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비싼 진료비에 10% 더 얹어 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로 인해 130억원의 세수를 얻을 것이라고 추산했다(대한수의사회 추산 70억원). 그러나 진료비 상승으로 인한 부담, 유기동물 증가, 인수공통 전염병 등의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중순 부가세 면제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진료비 부담으로 유기 동물 증가와 이로 인한 광견병 등 인수공통 전염병의 증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도 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단순히 부족한 세수 분을 서민에게 떠넘기기 위한 졸속 행정”이라며 “애완동물에 대한 부가세 징수를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는 “애완동물은 사치품이 아닌데 부가세를 내라는 건 말도 안된다”며 “제대로 된 공청회 없이 며칠 만에 부가세법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업계가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이익만 추구해 소비자만 피해를 입게 됐다” 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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