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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1.5세 스코틀랜드 국교 목사됐다

미주중앙

입력

4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국교인 장로교 최초로 한국인 목사가 탄생했다. 기념비적인 인물은 뉴저지 이민가정의 1.5세 한인으로 할리우드 에이전트 출신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국영방송 BBC와 유력일간지 가디언은 "한국인 차상윤(34.사진) 목사가 스코틀랜드 장로교 역사상 최초로 한국인으로서 목사 안수를 받는다"고 1일 잇따라 보도했다.

차 목사는 2일 스코틀랜드 알로아지역 세인트 멍고스(St. Mungo's) 교회에서 열린 안수식을 통해 이 교회 담임목사로 공식 부임했다.

안수식 다음날인 3일 알로아지역 자택에서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 응한 차 목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안수 받았다"면서 "종교개혁의 이유이자 변하지 않는 원칙인 예수님과 성경 기도의 본질을 다시 되새기는 목회를 하겠다"고 목회 소감을 밝혔다.

현지 주류 언론들이 앞다퉈 차 목사의 안수 소식을 전한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8세 때 뉴저지로 이민온 전형적인 한인 1.5세인 차 목사는 펜실베니아 주립대를 졸업한 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할리우드에서 맹활약하던 '스타 에이전트'였다.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줄리엣 루이스를 비롯해 라이언일병구하기의 지오바니 리비시 반지의 제왕의 호빗 '샘'역을 맡았던 숀 오스틴 등 개성파 배우들이 그에게 계약 일체를 맡겼다.

"한해 300만달러를 벌었어요. 무선호출기 2개를 양쪽에 차고 한손엔 휴대전화를 든 채 먹고 자고 했어요. 산더미 같은 대본과 싸우고 항상 깨어있어야 했어요. 한마디로 광적인 생활(maniac lifestyle)이었죠."

윤택하고 선택받은 자의 생활이었지만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당초 그는 영화 한편 때문에 프로듀서가 되자 결심하고 할리우드로 뛰어들었다. 한인들에게도 친숙한 '죽은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였다.

"그 영화는 아직도 내 삶에 생기를 줘요.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당시 나는 다음 사냥감과 다음 계약에만 급급해 있었죠. 꿈과 한참 멀어진 나를 발견하자 욕심이 사라졌습니다."

2002년 차 목사는 돌연 알래스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세계적인 자원봉사단체인 아메리코(AmeriCorps)를 통해 1년간 극지에서 교도소 수감자들과 한부모 가정의 도우미로 살았다. 그리고 목회자의 꿈을 위해 영국으로 향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목회학 석사를 거쳐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8년만에 목사가 됐다.

그의 목사 안수는 한국 교계에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올해는 한글성경 완역판 발행 100주년이다. 번역을 주도했던 이가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스 선교사다. 100년전 로스 선교사가 조선 땅에 뿌린 씨앗이 마침내 이역만리 그의 고향 땅에까지 열매를 맺게된 것이다.

연봉 300만달러를 과감히 차버린 차 목사의 올해 연봉은 얼마인지 물었다.

"3만 파운드(5만3000달러) 정도되나 잘 모르겠네요. 돈 보다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뛰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안수식에서 이 교회 420명 교인들에게 전한 감사의 인사는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교회의 벽을 넘어 세상을 배려하며 섬기되 세상에 유혹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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