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만점자, 우리 학교에서만 200명 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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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수능 모의고사 수리 만점자가 우리 학교에서 200명이 넘는다. 만점 못 받은 학생들도 실수로 한두 개 틀린 게 대부분인데 수능이 컨디션 테스트냐. 언어와 외국어는 내신시험을 보는 줄 알았다.”(고 3 윤모양)

 “평소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언어 50~60점대를 받는 학생들이 이번 시험에서 94~96점을 받았고, 만점도 우리 반만 여러 명이다. 공부할 의욕이 안 난다.”(고 3 임모군)

 지난 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성태제)이 실시한 6월 수능 모의평가가 과도하게 쉽게 출제되면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시험 변별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일선 학교에서 고득점자가 양산되자 학생들이 수능 대비 대란에 빠졌다. 이에 따라 수능출제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등에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항의 글이 폭주하고 있다. ‘근조 수능’ ‘내신형 수능’ 같은 용어가 인터넷에서 회자될 정도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올해 수능 ‘만점자 1%’를 내건 데 이어 신임 성태제 평가원장이 주도한 모의평가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교육당국은 지난해 ‘어려운 수능’에 이어 지난친 ‘물 수능’ 논란에 휩싸였다. <본지 2월 17일자 1면>

 만점자 1%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시험이 쉽게 출제되자 수험생들은 실력을 비교할 잣대가 없어져 헷갈려 한다. 재수생 이모(19)씨는 “평소 2~3등급을 받는데 EBS 교재를 풀어본 덕분에 언어·수리·외국어 모두 만점을 받았다”며 “하지만 실제 수능에서 실수라도 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 3인 하모(18)양은 “수리영역에서 항상 1등을 했는데 평소 30~40점 차이 나던 친구가 이번에 같은 1등급이 됐다”며 “한두 문제만 까다롭고 나머지를 중위권 이상이 모두 맞히게 내면 실수 여부로 운명이 엇갈린다”고 하소연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EBS 교재의 문제를 베끼다시피 출제한 것이 특히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수험생 장모(18)양은 “시험을 보다 EBS 수능특강 교재인 줄 알고 표지를 확인할 뻔했다”며 “차라리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말 대신 ‘EBS 암기내신시험’이라고 부르라”고 비아냥댔다. 고 3 최모(18)군은 “언어 비문학 지문을 마지막 하나 빼고 모두 EBS와 동일하게 출제하다니 교수들이 출제한 문제라고 믿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수생 자녀를 둔 나정화씨는 “사교육을 줄이자는 의도가 EBS 교재를 외워 영역별 만점자를 수두룩하게 만드는 것이었느냐”며 “교과서는 뒷전이고 EBS 교재만 파고들 거면 정규 교육과정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상위권 수험생들이 실수 한두 개로 등급이 바뀔 것을 우려해 수시에 많이 지원할 것”이라며 “학교에서도 교과서와 사고력 수업 대신 EBS 교재를 암기하는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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