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감기약 편의점 판매, 다시 추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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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소화제나 감기약 같은 가정상비약은 약국 외에서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 다수의 바람이 또다시 좌절됐다. 보건복지부가 이익단체인 대한약사회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9년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과제로 이 사안을 채택했고,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70~80%가 찬성하는 정책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올 초 복지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감기약 수퍼 판매’를 언급했다. 하지만 진수희 복지부 장관은 약사회 모임에 참석해 “(그렇게 안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더니 결국 그렇게 됐다.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약사회를 위한 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대신 복지부는 전국 2만 개 약국 가운데 앞으로 자정까지 문 여는 당번약국을 평일에는 4000곳, 휴일에는 5000곳 운영하겠다는 약사회의 약속을 수용했다. 그나마 이것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시민 입장에서 특정 시간에 전국적으로 영업하는 약국이 몇 곳인지 알 길이 없는 데다 기존의 비슷한 약속도 약사회가 지키지 않고 있는 탓이다.

 복지부는 당장 돌아올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의약품 재분류’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일반의약품인 해열·진통·소염제 등 상비약 일부를 약국이 아닌 곳에서도 팔 수 있도록 의약외품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이나 실행 가능성은 낮다. 약사회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을 줄이고 일반의약품을 늘리는 작업에만 몰두해 왔을 뿐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돌리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십수년 전부터 가정상비약 정도는 편의점이나 수퍼에서 팔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약품에 관한 규제가 강한 미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과 로비력이 센 약사회는 오·남용과 약화(藥禍) 문제를 내세워 줄기차게 반대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껏 일어난 수많은 약품사고에 대해 약사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이런 반대는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그들의 집단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