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전소<節電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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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33면

발전소나 변전소가 뭔지는 누구나 안다. 그러나 절전소(節電所)라는 단어는 좀 생소할 거다. 절전 설비를 만드는 곳일까. 그렇지 않다. 절전소는 눈에 보이는 시설이 아니다. 전기를 아끼면 다른 사람이 쓸 양이 그만큼 많아진다. 이를 두고 ‘절전=발전’이라는 발상이 가능하다. 예컨대 소비전력 60와트(W) 백열등을 같은 밝기의 10W짜리 LED 전구로 바꾸면 50W만큼 발전을 했다고 보는 거다. 나의 절전은 곧 타인을 위한 발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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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절전소란 절전형 기기나 전기를 아껴 쓰는 생활방식도 두루 포함한다. 에너지 효율 향상과도 뜻이 일부 겹친다. 그래서 환경운동가들은 ‘전기를 아낀다’는 말을 ‘절전소를 짓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냥 ‘전기 아껴 쓰자’는 호소형 구호와는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보통 절전운동이라 하면 큰 호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귀찮고, 불편하고, 구차하고, 왠지 남 좋은 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런 부정적 심리를 바꾸려는 발상의 전환이 곧 절전소 개념이다.

이를 고안한 이는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물리학자인 에이머리 로빈스. 그는 2009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든 환경문제 권위자다. 그는 1989년 ‘네가와트(Negawatt)’라는 말을 만들었다. 풀어 쓰면 negative watt. 즉, 쓰지 않아 남은 전력이다.

로빈스는 절약된 전기를 사고파는 ‘네가와트 마켓’도 구상했다. 탄소배출권처럼 미사용 전기를 시장에서 거래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쓰지 않은 전기에 값을 매겨 사고판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네가와트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방법도 없다. 이 때문에 네가와트 마켓은 아직 이론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절전소와 네가와트라는 말을 유독 많이 쓰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후쿠시마 원전이 멈춘 뒤부터 전기를 무조건 아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름이 다가오자 정전에 대한 걱정은 더 커지고 있다. 아무리 참을성 있는 일본인이라 해도 무작정 참자, 참자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갑갑한 이미지의 절전보다는 전향적인 절전소라는 말을 많이 쓰는 듯하다.
절전소 건립을 실행 중인 지자체들도 잇따르고 있다. 아이치(愛知)현 신시로(新城)시는 동일본 대지진 이전부터 절전소 건립계획을 세워 놨다. 또 야마가타(山形)현의 일부 지자체도 절전소 건립을 선언했다. 내용은 종래의 절전 캠페인과 별 차이 없지만 듣기엔 그럴듯하다.

이런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 효과가 적지 않을 듯하다. 로빈스도 소비자들의 절전운동과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이를 ‘네가와트 혁명’이라 부른다.
그의 주장은 가끔 원전 반대론에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에선 원전 찬반을 떠나 전력공급 자체가 모자랄 지경이다. 우리 형편도 크게 낫진 않다. 더워진 날씨에 냉방용 전력수요가 늘고 있다. 무턱대고 원전에 반대하기 앞서 저마다 절전소부터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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