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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황식 총리, ‘오만 군데’ 공개 더 미뤄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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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부산저축은행 비리가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끝나지 않을 기세다. 은 위원 개인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뇌물과 불법 로비의 실태도 가관이지만 또 다른 감사위원이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김황식 총리가 지난 2월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급했던 ‘오만 군데 압력’의 실상이 드러나는 듯하다.

 김 총리는 저축은행에 대한 감사를 지휘했던 감사원장 출신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초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5개 저축은행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결과 2조 6000억원 규모의 부실을 적발했다. 당시 감사원장으로 감사를 총지휘했던 김 총리는 5월 감사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총리는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 “부실은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이라며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문제”라고 언급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저축은행 부실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축적돼온 문제다. 그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왜 역대 정부나 금융당국이 수십 년간 제대로 기능을 못 했을까.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다. 방치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총리가 언급한 “오만 군데 압력”이다. 이제 그 ‘오만 군데’ 가운데 한 곳으로 은진수 감사위원이 포착됐다.

 은 위원 한 사람으로 끝이 아닐 것이란 추측은 합당하다. 은 위원은 2005년 부산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맡았기 때문에 ‘감사원법 15조(감사위원의 제척)’에 따르면 저축은행 감사 심의에 참여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의에 참여했다. 감사원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정치인 출신인 은 위원은 낙하산이다. 보수적인 감사원의 조직 특성으로 미뤄볼 때 낙하산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내부 감사위원의 협력이 있었다는 얘기가 감사원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김 총리는 ‘오만 군데’의 몇몇 예를 들었다. 국회 답변에서 “청탁 내지 로비가 있었다”면서 “저축은행 업계”를 언급했다. 부실 책임자로 “금융감독 당국”을 지목했다. 감사원 주변에선 ‘정치인들을 동원한 저항’이 심각했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이런 청탁과 로비가 실제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이 문제를 확인하고도 조치를 미루고, 관계자에 대한 징계수위도 낮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 김 총리가 ‘오만 군데’에 대한 국민적 궁금증을 해소해줄 때가 되었다. 김 총리는 감사원장 재직 시절 저축은행 감사와 관련된 청탁과 로비에 대해 공개해야 한다. 물론 오만 군데가 모두 불법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공개하기 곤란한 부분은 검찰에 알려주기만 해도 된다. 그게 총리가 통할(統轄)하고 있는 내각의 제 기능을 찾아주는 길이며, 이명박 정부의 국정 표류를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