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 다니는 독신주의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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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호 10면

나는 독신주의자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고자 마음먹었다. 나는 성정이 분방한 데다 결혼해서 한 가정을 영위할 정도의 도덕성과 책임감이 도무지 없었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스물여섯에 결혼했고 심지어 결혼정보회사에서 11년째 근무하고 있으니까.나는 고등학교 때 문학회에 가입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또 중학교 시절 교생 선생님의 추천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감명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문학회에 든 것은 아니다. 그건 내 옆자리에 앉은 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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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처럼 크고 맑았던 내 짝은 항상 삼중당 문고판 책을 교복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문학회에 들어야겠다며 자기 혼자 가기 어색하니 함께 가입하자고 꼬드겼다. 나는 귀가 얇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의 청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 친구를 따라 문학회에 가입했다. 크고 맑은 눈망울만 보더라도 장차 위대한 작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던 그 아이는 얼마 안 가 문학회를 그만두었다. 외모로 보나 내면으로 보나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던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문학회에서 매주 합평회도 하고 봄이나 가을에는 시화전도 열고 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분당에 살지만 나는 오랫동안 안양에서 살았다. ‘안양’이라는 이름도 예쁘고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뜻도 아름답지만 그 때문에 내가 안양에서 오래 산 것은 아니다. 안양은 내가 태어난 고향도 아니고 내가 다닌 학교나 직장이 있던 곳도 아니다. 그런데도 안양에서 10년 넘게 살게 된 것은 문학회 선배 때문이었다.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던 선배는 법대로 진학하더니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서 당시에는 안양 평촌에서 살고 있었다. 말수가 적고 칭찬에도 인색한 선배가 안양을 두고 ‘사람이 살 만한 동네’라고 자랑하는 데다, “한 동네 살면 자주 얼굴 볼 수도 있고 좋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하자 나는 당장 이삿짐을 꾸렸다. 내가 안양으로 이사하고 2년도 안 지나 그 선배는 서울로 이사 갔다. 나는 선배가 떠난 후에도 10년 넘게 안양에서 살았다.

요즘도 결혼하려는 동료나 후배를 보면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꼭 결혼해야 하겠느냐고 눈치 없이 말했다가 “이 사람 뭐야?”라는 야유를 받는다. 나는 가끔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근무한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깜짝 놀라서 말이다. 물론 내게도 중매본능은 있다. 혼자 있는 사람을 보면 잘 어울리는 이성을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독신주의자인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입사한 것은 아니다. 그건 순전히 후배 때문이다. 무슨 사내가 그렇게 손이 곱고, 또 그 고운 손으로 시는 어찌나 잘 쓰는지. 좋아하는 후배가, 그것도 시인이 다니는 회사라 나는 얼른 입사했다. 물론 함께 정년 퇴직하자던 그 후배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퇴사했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나는 친구 따라 강남 갔다. 그래서일까? 내가 11년째 근무하는 회사가 있는 곳이 강남이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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