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갑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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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한.일 합작 연극 "강 건너 저편에"는 두 나라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연극에 등장하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서 화해하게 된다. [예술의전당 제공]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껄끄럽지만 TV 드라마.가요 등 한류 스타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 교류는 여전하다. 14일 일본 순수예술계의 자존심과도 같은 도쿄 시내 신국립극장에서는 한.일 합작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올려져 화제다.

문제의 연극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만들어져 일본과 한국에서 차례로 공연됐던 '강 건너 저편에'. 2003년 권위 있는 아사히예술상을 받아 상금(2000만엔)이 나오자 일본 내 지방공연을 하려던 차에 '도쿄에서도 한 번 더''서울에서도 한 번 더' 요청이 잇따라, 공연하게 됐다.

특별히 '강 건너…'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가깝고도 먼 이웃, 싸우고 나서도 또 만나야 하는 특수 관계인 한국과 일본의 실상을 다른 어떤 작품보다 빼어나게 전하기 때문이다.

▶ "강 건너…"의 일본측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

연극의 배경 공간은 미아 찾기 안내 방송이 되풀이되고 자동차 소음이 시끄러운 한강 둔치. 한국어학당 강사인 김문호(이남희 분)는 60대 후반의 노모 정끝단(백성희 분)과 동생 부부, 자신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학생들과 함께 피크닉을 나온 참이다. 동생 재호(서현철 분)는 전날 과음으로 심신이 불편한 상태고, 전망 없는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캐나다로 이민가려 하고 있다.

일본인 수강생들은 일본 사회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고 할 만하다. 일본의 일급 여배우 미타 가즈요가 맡은 사사키는 여섯 살까지 한국에서 살았던 60대 초반의 가정주부. 하야시다와 기노시타는 프리터족(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인생을 즐기는 부류), 니시타니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이고 사쿠라이는 결혼하자 마자 아내가 도망간 '나리타(국제공항) 이혼' 희생자다.

연극의 가장 큰 묘미는 각각 한국인과 일본인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한국 사회의 문제점, 일본 사회의 문제점, 한.일간의 갈등 양상 등을 사진 찍듯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사람들을 이민가게 만들 만큼 문제 있는 나라고, 니시타니가 사사건건 재호를 트집 잡자 하야시다는 "그렇게 조그만 부분까지 문제 삼는 게 문제"라고 '일본인의 문제'를 지적한다.

연극은 철저히 한국과 일본이 절반씩 힘을 보태 만들어졌다. 대본을 히라타 오리자.김명화가 함께 써 히라타 오리자.이병훈이 함께 연출했고, 배우도 일본인 여섯 명, 한국인 다섯 명이다. 일본 배우는 일본말로 연극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을 감상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

히라타 오리자는 극적 장치 없이 일상의 최대한 근사치를 보여주는 일명 '조용한 연극'의 기수로 꼽히는 인물. 그는 "한.일 간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금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일본 사람들이 모두 한국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서로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우호관계의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한국공연은 7월 1일~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도쿄=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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