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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김정일의 마지막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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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이 청와대를 떠난 뒤 가장 눈여겨 보는 나라가 중국이라고 한다. 현지에도 여러 차례 다녀온 모양이다. 그는 “우리보다 북한이 대중(對中) 접근에선 한참 고단수”라고 했다. “현직은 물론 중국의 전직 원로들까지 끔찍하게 챙기더라”며 “받는 쪽에서 감동할 만큼 꼼꼼한 서비스 정신이 일품”이라고 전했다. 북한의 숨겨진 엄청난 외교자산이란 것이다. 청와대에서 직접 권력 흐름을 체험했던 정 전 실장의 관측인 만큼 쉽게 흘려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김 위원장이 멀리 남쪽으로 장쩌민(江澤民·장택민) 전 주석을 찾아가는 장면을 보며 정 전 실장의 탁월한 안목에 무릎을 쳤다.

 김 위원장의 의도는 중국 현대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이후 중국의 운명은 원로들의 손에 좌우됐다. 1977년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의 복권은 군부 원로들의 작품이다. 예젠잉(葉劍英·섭검영)과 리셴녠(李先念·이선념)이 마오의 홍위병인 4인방을 체포하고 덩을 불러올렸다. 화궈펑(華國鋒·화국봉)을 몰아낼 때는 천윈(陳雲·진운), 왕전(王震·왕진)이 총대를 멨다. 89년 천안문 사태의 유혈진압 회의는 정치국이 아니라 덩의 집에서 열렸다.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입을 다물고 양상쿤(楊尙昆·양상곤)·보이보(薄一波·박일파)·펑전(彭眞·팽진)이 강경 분위기를 주도했다.

 덩 부부를 포함해 이들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8대 원로’다. 비슷한 연배에다 대장정과 문화혁명을 함께 겪었다. 따지고 보면 중국 원로 정치의 상징이 바로 덩 자신이다. 그는 89년 스스로 평당원으로 내려왔지만 97년 숨질 때까지 최고 실력자로 남았다. 단지 원로라는 명함 하나로 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었다. 중국의 원로 정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07년 보이보가 마지막으로 숨진 그 해, 중국 공산당은 국가 대사에 퇴임 원로의 의견을 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금도 장 전 주석과 리펑(李鵬·이붕)·주룽지(朱鎔基·주용기) 전 총리 등은 후계구도 구축 같은 중대 결정 때마다 정치국 회의에 비공개로 참석한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이런 권력구도를 정확히 꿰뚫고 급소를 찌르는 선택이다. 사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주석을 비롯한 공청단(共靑團) 출신과 달리 장 전 주석의 상하이파와 태자당(太子黨)은 북의 3대 권력세습에 호의적일지 모른다. 권력을 물려받은 공통분모 때문이다. 하지만 노선 차이는 각오해야 한다. 상하이파는 개혁·개방의 주도세력이다. 이들과 손을 잡으려면 북한도 뭔가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게 분명하다. 장 전 주석의 통치시절 김 위원장이 두 번 중국을 방문한 뒤에도 그랬다. 북한은 울며 겨자 먹기로 2002년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를 선물로 내놓았다.

 이번 방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중국 네티즌들의 변화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김 위원장의 현장 방문 사진과 동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몰라보게 달라진 분위기다. 여기에다 2억 명의 중국 트위터들은 스마트폰에 자신들의 감정을 여과 없이 올리고 있다. “차량 통제로 귀찮아 죽겠다” “또 무얼 구걸하려 왔느냐”는 비아냥들로 넘쳐난다. 싸늘한 민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관심이다. 김 위원장이 일주일간 5000㎞ 넘게 중국을 휘젓고 다니지만 ‘김정일’은 인터넷 인기 검색어 50위에도 끼지 못한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이 성공할 수도 있다. 3대 세습을 공식 승인받고 쌀까지 받아낼지 모른다. 그렇다면 권력 흐름을 짚어내는 그의 동물적 감각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 흐름보다 훨씬 주목할 것이 사회의 흐름, 민심의 흐름이다. 북한이 잠시 중국 원로들의 지원을 등에 업는다 해도 중국 민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인터넷의 분위기는 북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정 전 대통령 실장도 북한의 대중 외교 전술을 부러워하면서도 마지막 결론은 정반대였다. “길게 보면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라고.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