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라선영 교수] 항암제 보험적용 난항 생사 기로에 선 신장암 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9면

라선영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종양내과 교수

중증(重症) 암환자에 대한 정부의 건강보험 혜택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편에선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치료제 때문에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을 본다.

 최근 새 약제 개발로 극적인 효과를 본 대표적인 암이 진행성 신장암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재발성 또는 진행성 신장암으로 판정받으면 기존의 치료법으로는 평균 7~9개월밖에 살 수 없었다. 그러나 표적치료제 개발로 1차 항암제 사용 후 평균 20개월 이상 생존이 가능하다. 또 2차 항암제까지 사용하면 2년 이상 살 수 있다.

 진행성 신장암은 발생 연령이 40~50대로 젊고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다. 치료받으면서 일상생활은 물론 직장생활을 하는 환자도 많다. 그런데도 2차 약제가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를 마주하면 의사의 마음 역시 환자 가족의 애절한 심정과 다르지 않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차 표적치료제에 대해 약효와 비용경제성을 인정, 보험급여 결정을 내렸다. 당연히 올 초에는 환자들이 보험 혜택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간 협상이 결렬돼 환자에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다”는 절망적인 말을 해야 한다. 물론 개인이 약값 전액을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환자가 고가의 표적치료제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진행성 암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급격히 병이 진행돼 약이 있어도 생존 기회를 놓친다. 얼마나 빠르게 전문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중증질환을 위한 치료제, 특히 지금까지 없었던 혁신적인 치료제가 개발되면 다양한 방법으로 임상 현장에 적용하도록 지원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치료비용 경감을 위한 정책이 우선한다.

 신장암 환자가 증가하면서 1차 표적치료제 사용 후 내성이 생긴 환자가 점차 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환자들은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중증 암환자에게 최신 암 치료제는 마지막 희망이다.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서 유일한 치료제의 보험 적용을 손꼽아 기다리는 환자와 이들 가족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당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결단이 절실하다.

라선영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종양내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