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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감동 없는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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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한국 사회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양극화, 청년실업, 고령화 복지, 지역 불균형, 사교육 전쟁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고질(痼疾)은 선거 때만 되면 정권을 공격한다. 대통령이 열심히 몸을 만들어도 고질을 쉽게 이길 수 없다. 경제 위기 극복, 사상 최대의 기업실적과 복지예산, 세계 7대 무역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 같은 실적이 있어도 그렇다. 그래서 이명박(MB) 대통령은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유권자의 심리를 보면 억울할 것도 없다. 많은 국민은 문제 못지않게 문제에 다가서는 정권의 태도와 인상(印象)을 주시한다. 정권이 뭔가 감동을 주면 문제가 많아도 호의적인 감정을 갖는 것이다. 많은 이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대통령이 신도 아닌데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권의 인상이 좋으면 믿어볼 수 있다.”

 ‘인상이 좋은 정권’이란 새롭고 개혁적이며 헌신적인 인상을 주는 정권이다. 그리고 정권의 인상은 사실상 핵심 인물들의 인상이다. 대통령은 이미 국민이 선택했다. 그러므로 다음으로 중요한 건 대통령의 선택이다. 대통령이 어떤 핵심 인사를 선택하느냐에 정권의 인상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MB 정권은 실패했다.

 3년 전 이상득 의원에게 총선 불출마는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5선인데 동생이 대통령이 됐다고 국회의원을 포기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가도를 달렸고 결국 많은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그룹 공천학살, ‘형님예산’ 소동, 포항·경북 인맥의 특혜 논란…. 그가 ‘국내 권력’을 떠났다면 지금 정권의 양태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 정권에 희생이란 단어가 붙어있을 것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감옥살이를 오래한 민중당 투사 출신이다. 그렇다면 그의 상징은 개혁이어야 한다. 나태와 탐욕의 구(舊)정치를 갈아 엎는 혁신적인 변화…. 정권을 살려내는 그런 개혁을 이끌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개혁보다는 야심을 향해 질주했다. 박근혜파 공천학살에 깊이 개입하고 나중에는 편의적인 권력 유지를 추구해 갈등을 빚었다. 이원집정부제로 차기 권력을 나누려는 개헌이 무슨 개혁인가. 이 장관은 개국공신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부당한 공격을 받을 때 몸을 던져야 했다. 2007년 경선 때 그는 검찰이 ‘도곡동 땅’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대검청사 앞에서 항의 농성을 이끌었다. 그랬던 이가 왜 광우병 폭력에는 맞서지 않았나.

 어느 정권이나 소장파는 참신해야 한다. 그런데 주류든 중도파든 한나라당의 소장파는 전혀 참신하지 않다. 아니 의식으로 보면 노장파다. 지금 쇄신을 외치는 이 중에서 폭도가 정권을 위협할 때 시청 광장에 뛰쳐나온 이가 한 명이라도 있는가. 천안함 폭침 때 “민주당은 북한을 감싸지 말라”며 1인 투쟁이라도 벌인 이가 있는가. 소장파는 위기 때는 침묵하다 선거에서 지기만 하면 정권에 화살을 쏜다.

 한나라당은 정권의 한 축이다. 그런 당의 지도부가 국민에게 무슨 감동을 주었나. 대표는 고시 공부를 하느라 징집영장을 받지 못했다고 하고, 2인자는 그런 대표를 무시하며 따로 살림을 차렸다. 당의 최고위원회의는 봉숭아 학당이었다. 최고위원들이 정권의 성공을 고민하기보다는 서로 공격하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물러나는 대표가 “아귀처럼 나를 물어뜯었다”고 한(恨) 맺힌 말을 남겼을까.

 이 정권은 이런 인물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왜 흥행이 저조한가”라고 묻고 있다. 매표소에서 발길을 돌린 관객들은 제작진과 연출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MB에게는 왜 참신하고 개혁적이며 헌신적인 인물이 없는가. 다음 대통령에게는 그런 인물이 있을까. 당선됐다고 정권이 자동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이지만 성공 여부는 대통령의 선택이다. 감동적인 인물이 있어야 정권이 산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