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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삶 살다간 무소륵스키 그의 가곡 듣다보면 아픔까지 공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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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호 31면

애석하다. 임재범을 뺏겼다. 온 사방에서 갑자기 그의 옛 노래 ‘너를 위해’가 들려온다. 느닷없이 인기가 오르고 사방에서 불러대고…, 이제 당분간 임재범은 임재범으로 살 수 없게 된다. 그래, 먹고 살아야지. 돈 벌고 타협하고 착한 척도 하면서. 이해하기로 한다. 그도 오십 줄 아닌가.

詩人의 음악 읽기 나를 감동시킨 음악가들 <上>

오래 전 봄날, 친구인 사진작가 윤광준과 밝히기 ‘껄적지근한’ 사유로 남쪽바다 진해를 갔었다. 벚꽃 터널을 통과했고 목책으로 만들어진 바다 산책길 한 귀퉁이에 주저앉아 일회용기에 담아온 회와 소주를 마셨다. 그 바닷가로 이끈 진해 사는 여인의 이름이 뭐였던가. 아침 일찍 서울행을 서두르는데 진해 여인이 카세트테이프를 건넸다. 처음 듣는 이름, 임재범이었다. 그 속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라디오 출연 때 그 ‘전쟁 같은 사랑…’을 꽤 여러 번 틀었다. 홀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누구나 가슴에 품고 사는 유행가가 있는 법이다. 오랫동안 임재범은 나만의 임재범이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리고 가슴 아릿한 개인사와 더불어. 임재범이 시장판으로 불려 나가도 아직 남은 자원이 몇몇 더 있다. 껄렁한 강산에, 축축한 전인권, 죽어도 유명해질 수 없는 김두수와 강허달림. 죽은 김재기, ‘날 싫어하나요?’를 반복해 외치는 노래 ‘sam’의 미선이. 이름들이 노래들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나만의 음악 찾기는 기다림의 산물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내 일생에 걸친 음악 듣기는 두 가지 목적성을 향해 있었다. 첫째, 굉장하고 대단하다고 칭송받는 음악이 왜 그런지를 이해하는 일. 둘째, 나만의 작곡가·연주가·곡을 발굴(?)하고 만나는 일. 언제나 그랬다. 첫째 항목인 유명한 것이 왜 유명한지를 아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의 모든 음악 애호가가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를 신처럼 떠받들건만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아직도 그에게 닿지 못했다. 그런 작곡가는 말도 못하게 많다. 하이든과 헨델을 제대로 듣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들은 내가 늙고 나서야 귀에 들려왔다. 바그너는 여태 멀었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정반대의 경향을 보여주는 두 피아니스트.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우리치오 폴리니와 난로처럼 따뜻한 안드라스 시프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둘 다 수용한다. 자부심. 폴리니와 시프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내 음악 이해가 넓어졌다는 자부심의 영역이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임재범. [MBC 홈페이지]

두 번째 항목인 나만의 음악 찾기는 기다림의 산물이다. 느닷없이 때론 엉뚱하게 그런 음악이 찾아온다. 가령 무소륵스키(위 사진)라는 불행한 사람의 생애가 먼저 찾아왔고 그의 가곡모음 ‘햇빛도 없이’가 결정타를 날렸다. 의자에서 철벅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에 깍지를 끼고 ‘햇빛도 없이’를 반복해 듣던 어떤 한밤중 이래 무소륵스키는 나만의 음악가가 됐다. 그가 앓던 간질병을 같이 앓고는 한다. 불안한 운지법으로 신경을 거스르는 재즈 피아니스트 셀로니우스 몽크도 프리재즈의 오네트 콜먼도 상상초월의 듀크 엘링턴(아, 얼마나 엄청난 뮤지션인지!)도 언제 어느 때인가 놀라워하면서 만났고 일생을 동행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으려나.

그런데 남은 숙제가 있다. 좋아하면 그만인가. 다 동급이고 대등한가. 무소륵스키와 임재범은 같은 반열일까. 인생은 짧고 음악은 끝이 없는데 이 산도 기웃, 저 산도 기웃하면서 유람하기에는 세월이 아깝다. 취향에도 급수가 있고 격이 있으니 일정한 정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음악의 경우는 장르적인 분별이 필요하다. 왜 클래식 음악이고 팝·록은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이며 재즈와 월드뮤직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또 원하지 않아도 사방에서 바이러스처럼 침투해 들어오는 가요는 어떻게 소비할 것이며 공부의 대상처럼 여겨지는 국악류의 트래디셔널 음악은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런 궁금증에 대해 정면으로 정직하게 마주 서야 한다.

40년간 모은 음반 3만 여 장
의식하고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시점이 1972년, 중학생 때였다. 음악을 듣는 일은 음반을 사들이는 일이다. 40년간 3만여 장의 판을 구입하는 동안 음악의 전 장르를 한 바퀴 돌았다. 더 이상 놀이일 수 없는 이 오랜 놀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그 첫 마디는 각 장르에 가치의 서열을 매겨보는 일이다. 70~80년대 헤비메탈에 푹 빠져 있는 어떤 음악광은 가령 요즘 유행하는 레이디 가가나 테일러 스위프트 류의 팝송을 경멸해 마지 않는다. 하지만 노장 데프 레파드와 테일러 스위프트가 한 무대에서 얼마나 멋진 인터플레이를 펼쳐 보이는지. 또한 대중음악 전부를 발 아래 깔고 보는 클래식 매니어의 소견은 정당한 것인지. 그 불통의 고집들을 한번 해부해 보아야 한다. 과연 좋아하면 다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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