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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난과 ‘에너지 포트폴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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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고윤화
대한LPG협회 협회장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은 주식투자자들에겐 황금률이다. 한 바구니에 담긴 계란은 한번에 깨지기 쉬우니 가능하면 나누어 담자는 것이다. 한 나라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이 말이 여실히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일본의 원전 사고다. 대지진과 뒤이은 원전사고를 겪으며 일본은 각국의 에너지 관계자들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졌다.

 첫째, 원전의 경제성과 환경성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다. ‘원전 안전 신화’에 금이 가면서 이제 원전의 경제성은 단순히 ‘킬로와트(㎾/h)당 발전단가’로만 따지기 어려워졌다. 둘째, 자연재해 등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한 에너지 포트폴리오(portfolio)의 구성이다. 특정 에너지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을 경우 신축성이 상실돼 위기상황 시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뿐 아니라 안정적 공급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재해 대비책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에너지원을 다각화한 정책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액화천연가스(LNG) 소비국이지만 지진 등과 같이 비상 상황에 대비해 LNG를 대체할 수 있는 액화석유가스(LPG) 역시 일정 비율로 유지한다. 이를 통해 이재민이 삶터를 떠나지 않고도 취사와 난방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들 가스체 에너지는 유해물질 배출이 적고 가정에서 취사·난방용 연료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메탄이 주성분인 LNG는 부탄과 프로판으로 구성된 LPG보다 액화 온도가 훨씬 낮아 용기의 소형화가 쉽지 않다. 이런 특징 때문에 LNG는 중앙집중식 배관을 통해 공급되므로 재해를 당하면 복구가 어렵다. 반면 LPG는 액화가 쉬워 이동과 보관이 편리하므로 ‘분산형 에너지’로 불린다.

 이 같은 분산형 에너지의 중요성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연평도는 대다수 가구가 LPG를 사용하고 있어 포격 이후에도 가스 공급이 원활했다. 만약 LNG 공급방식이었다면 배관이 파괴돼 가스공급 복구가 지연됐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국가적 재난상황을 대비해 좀 더 신축적인 에너지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LPG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일이다.

 LPG는 대표적인 청정 에너지이자 서민들과 애환을 같이해온 서민 에너지이며, 위기 시 대응력이 뛰어난 분산형 에너지다. 그러나 정부의 LNG 위주 공급정책에 밀려 점점 설 자리도 잃고 있다. 그 과정에서 LPG를 많이 쓰는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성이 없는 지역까지 도시가스 공급이 확대되면서 경쟁 연료인 LPG산업 기반의 붕괴도 우려된다. 다행히 정부가 최근 LNG·LPG 균형발전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LPG업계에선 가정용 LPG 시장 유지를 위한 최소 기준을 마련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줄 것을 기대한다.

 한 나라의 에너지정책은 경제성·환경성·에너지 안보라는 3개의 기준을 통해 에너지 자원 간 최적의 비율을 결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나라도 중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에너지 자원 간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때다.

고윤화 대한LPG협회 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