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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감사는 왜 방패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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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심상복
논설위원

감사(監事)는 까칠해야 한다. 그게 존재 이유다. 창은 아니더라도 송곳은 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제의 부산저축은행 감사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공기업과 그 언저리 기관의 감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왜 창의 본분을 망각하고 방패가 되는 걸까. 자리에 비해 과도한 보수와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 좋은 자리는 누구나 오래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직분에 충실하다간 자칫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임직원의 잘못을 들추고 내부 비리를 캐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부임 초기엔 임무를 몇 번 되뇌지만 얼마 안 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바뀐다. 봐도 못 본 척하고 나중엔 아예 보려고 하지 않게 된다.

 공기업 감사는 일단 법적으로 기관장과 동등하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다. 공기업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사람도 기관장과 감사 둘뿐이다. 보수는 기관장보다 20% 정도 적다. 그래도 산업은행·한국거래소·코스콤 등 일부 금융 공기업 감사의 연봉은 3억~4억원에 달한다. 씀씀이는 조직 전체를 운영하는 기관장에 비해 훨씬 작다. 실질 수입은 감사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뿐만 아니다. 기관장은 비판 받거나 책임질 일이 많다. 감사는 무슨 큰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가만히 누릴 걸 누리면 된다. 보수나 대우는 좋은데 책임질 일이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자리가 어디 있는가. 이런 자리를 챙겼으니 그 뒤엔 이걸 지키는 데 온 힘을 쏟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공기업 감사는 아무나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업무능력이 없어도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천에 떨어진 정치인이나 권력 주변을 맴돌던 사람, 고위 관리를 지낸 이들이 온갖 연줄을 동원해 얻는 자리다. 이들은 그동안 쌓은 정치적 네트워크나 자신이 몸담았던 친정을 앞세워 로비스트 역할을 하곤 한다. 자신에게 차와 비서까지 대주는 고마운 조직을 위해 기꺼이 방패가 되는 것이다. 월급값을 하는 셈이다. 진정한 월급값은 창의 역할인데도 말이다.

 정권이나 정치권의 낙하산으로 감투를 쓴 사람들은 이런 보은(報恩)이 또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기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한번 주어진 기회를 망칠 수는 없다. 임기 동안 노조와도 무조건 잘 지내야 한다. 이런 이들에게 개혁이니 비리 척결을 요구하는 건 애당초 무리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까. 감사 자리의 매력을 왕창 줄이는 것이다. 좋은 대접에 걸맞게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감사가 제 역할을 못함으로써 생긴 손실에 대해서는 몽땅 배상토록 하는 식이다. 이게 안 되면 월급과 대우를 낮춰야 한다. 그게 세금 낭비를 막는 길이다. 감사 역할을 외부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외부인이 감사로 들어가도 몇 달만 지나면 내부인의 시각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외부 감사는 임무 수행에 더 효과적인 측면도 있다. 101개 공공기관 중 35곳의 감사가 올해 바뀐다고 한다. 감사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든지 혜택을 왕창 줄이든지, 하루빨리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