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당뇨전문가 최수봉 교수가 무릎 꿇고 울먹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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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국민병인 당뇨병은 완치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처음부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치료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더 나은가?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은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분비된다. 이 베타세포가 망가지거나 힘이 떨어져 혈당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병이 당뇨병이다. 당뇨병 환자에게 (합성) 인슐린이 소중한 약인 것은 이래서다. 하지만 초기부터 인슐린에 의존하는 2형(성인형) 당뇨병 환자는 드물다. 대개는 인슐린 투여를 일찍 시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주사제여서 투약 편의성이 떨어지는 데다 아껴둬야 할 치료의 ‘마지막 카드’로 여겨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당뇨병 치료의 주류는 식사요법과 운동→먹는 약(혈당강하제)→하루 1~2회 인슐린 주사로 이어지는 ‘계단식’이었다.

 이 같은 기존의 치료법에 반기를 든 당뇨병 전문가가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최수봉(내과) 교수다. 지금까지의 방법대로 치료하면 처음 1년가량은 환자의 혈당을 떨어뜨리지만 췌장에서의 인슐린 분비는 계속 줄어들어(고혈당 유지) 망막손상·당뇨발·단백뇨 등 합병증 발생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세계 제2형 당뇨병 인슐린펌프학회’ 회장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9일 오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들이 눈 멀지 않고, 다리를 잘라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라면서 울먹였다. 이어 “국내 당뇨병 전문가들이 정직하지 않다”며 “의사들이 당뇨병을 악화시켜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그가 기존의 당뇨병 치료법과 의사들을 폄하·비난한 근거는 이렇다. 미국의 당뇨병센터 29곳에서 1441명의 환자를 당뇨병약 투여그룹(720명)과 인슐린 펌프 사용그룹(721명)으로 나눈 뒤 10년간 추적했는데 인슐린 펌프 사용그룹의 망막증(당뇨병 합병증의 하나) 발생률이 약 복용그룹에 비해 76%나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인슐린 펌프는 최 박사가 30여 년 전에 개발해 국내는 물론 미국 FDA(식품의약국)·유럽에서 판매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다. 당뇨병 환자가 몸 밖에 휴대하면 필요할 때 인슐린이 체내로 주입된다.

 인슐린 펌프가 ‘만능’ 치료기는 아닐 것이다. 감염, 노인 환자의 사용상 어려움 등 문제점도 제기된다. 최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당뇨병 전문가가 훨씬 많다. 인슐린 펌프가 시판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이 기기를 장착한 환자는 국내 전체 당뇨병 환자의 3%에 불과하다.

 기자는 최 교수가 당뇨병 학계에 두 가지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당뇨병이 완치될 수 있느냐다. 그는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면 췌장 기능이 회복돼 당뇨병을 완치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당뇨병이 사라져 인슐린 펌프를 떼어낸 환자도 상당수 있다고 했다. 반면 다수 전문가는 당뇨병 완치는 불가능한 병이고, 혈당 조절·합병증 예방 등을 관리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할 병이라고 본다. 완치는 환자와 가족에겐 꿈같은 일이다. 최 교수는 자신의 치료법으로 완치된 환자가 있다면 그 증거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둘째는 당뇨병을 발병 초기부터 적극적·공격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의 ‘손익계산서’다. 최근 선진국의 당뇨병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연구를 심도 있게 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학계도 국민 건강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충분한 검토를 거쳐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건강보험공단은 인슐린 펌프의 보험 적용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의료보험사들은 개당 9000달러인 인슐린 펌프를 무료로 제공한단다. 당뇨병 합병증을 줄여 혈액투석 등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봐서다. 국내에서 대당 200만~250만원이나 하는 인슐린 펌프는 많은 당뇨병 환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박태균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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