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회사 돈과 제 돈 구분 못하는 기업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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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내 2위 닭고기 가공업체 마니커의 한형석 회장이 회사 돈 132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됐다. 그는 횡령(橫領)한 돈으로 서울 강남의 고급 빌라에 개인 명의로 투자하고, 이 빌라 최상층 펜트하우스를 사들였다. 18개의 비자금 전용 차명계좌를 두고 개인금고처럼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빼냈다고 한다. 창업주라는 이유로 회사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회사 돈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회사 재산을 축내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오리온그룹 담철곤 그룹 회장 일가와 조경민 사장은 회사 돈 19억7000만원을 개인적으로 썼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담철곤 그룹 회장은 조 사장을 통해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포르셰 카이엔 같은 수억원대의 고급 외제 차를 회사 돈으로 리스 받아 자녀 통학 등에 사용했다. 자동차 리스료와 차량보험료, 자동차세 등 5억7000여만원은 회사 돈으로 냈다. 재계 서열 30위권 정도의 중견기업이 이 정도의 도덕적 수준밖에 안 된다니 당혹스럽다.

 어디 이 회사들뿐이랴. 그동안 우리는 탈세·비자금 조성 등을 통해 회사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다 걸려 쇠고랑을 찬 기업인들을 수없이 봐왔다. 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온데간데없었다. ‘천민 자본주의’라는 비판이 나오고, 반(反)기업 정서가 커지는 현상에 한몫했다. 지금도 주머닛돈이 쌈짓돈인 듯 회사 공금을 제멋대로 써대는 삐뚤어진 기업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기업이라는 법인은 독립적인 개체다. 창업자나 그 가족의 사유물이 아니다. 자기가 만들고 키워온 회사이니 회사 돈도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낡은 생각은 버려야 할 봉건적 유물이다. 그런 관행을 용납하던 시대도 이미 지났다. 세계적 억만장자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존경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회사 돈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자신이 번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되돌리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다. 제 돈과 회사 돈도 구별 못하는 기업인은 일벌백계로 단죄(斷罪)해 전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 흙탕물을 만드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기업 이미지 전체를 먹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