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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알 수 없는 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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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한고제(漢高帝)는 해와 달처럼 명철했고 신하들의 지략은 연못처럼 깊었으나 몸소 어려움을 겪고 위험을 무릅쓴 뒤에야 비로소 평안을 얻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신하들도 장량·진평 같지 못하건만, 계획만 오래 세우며 앉아서 승리를 얻어 천하를 평정하려 하니, 이는 신이 알지 못할 첫 번째 일입니다.”

 제갈공명의 만고명문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신이 알지 못하는 일(此臣之未解也)’이라는 여섯 개의 반어법으로 안일과 나태에 빠져 있는 군신(君臣)을 질타한다. 천하의 공명도 알 수 없는 나랏일이 여섯 가지나 되었거늘 우둔한 나로서야 알지 못할 일(此吾之未解也)이 어찌 여섯뿐이랴?

 내가 알 수 없는 일 하나. 개정된 조선노동당 규약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삭제하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을 선언한 권력세습의 사회주의 지상낙원, ‘우리 민족끼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서울 불바다’···. 이처럼 일그러진 사회주의, 이토록 뒤틀린 민족주의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권력에서 소외된 신성가족(神聖家族)의 장손조차 3대세습은 사회주의와 모순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둘. 집단공개총살·정치범수용소·연좌제·일상적인 감시와 통제···. 그 혹독한 억압의 사슬에 얽매인 북한동포들이 자유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할 이때, 북한인권법이 ‘북한 정권을 자극할 우려’ 때문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2400만 동포의 처절한 삶을 외면한 채 오로지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의 눈치만을 힐끔거리는 사시(斜視)가 진정 민족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세습독재체제를 두둔해서라도 ‘화해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려는 정략적 속셈 때문인지?

 셋. 우리 군의 정례적 방어훈련에도 “전쟁을 하잔 말이냐”며 버럭 역정을 내는 평화주의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 핵 참화’를 들먹이는 테러집단에게는 어째서 “핵전쟁이라도 하잔 말이냐”고 얼굴을 붉히지 않는지?

 넷. 일본 원전(原電)의 방사능 유출을 계기로 우리 원전의 안전성에도 궁금증이 깊어지는 상황인데, 생명 같은 지하수 물줄기에 방사능을 노출시켰을지도 모를 두 차례 지하핵실험, 경수로 건설,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등 전혀 공개되지 않은 북한의 막무가내식 핵개발에는 웬 일로 생태파괴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북한의 핵 운용 능력이 신뢰할 만하다는 과학적 확신 때문인가, 아니면 이 역시 북한 정권을 자극할 우려 때문인가?

 다섯. 도발과 대화의 두 손을 번갈아 내밀며 교묘히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북의 고단수 심리전 앞에서 기껏 풍선이나 확성기 문제에도 허둥대며 골머리를 앓는 것이 대북정책의 현주소이니, 더 나아가 무슨 원대한 통일의 경륜을 기대할 수 있으랴?

 여섯. 재스민(튀니지)·수련(이집트)·석류(리비아)·아네모네(시리아)로 줄지어 피어난 민주시민혁명이 오랜 억압의 땅들을 찾아 봄 꽃망울 터지듯 번져가면서 G2의 중국마저도 모란(牡丹)의 봉오리가 움틀까 전전긍긍하는 터인데, 66년째 떠있는 ‘민족의 태양’ 아래서도 햇볕 한 점 없이 춥고 어둡기만 한 북녘에는 ‘목란(木蘭)혁명’의 싹이 돋아날 기색조차 희미하다고 하니, 이 또한 내가 알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아무리 꽉 막힌 폐쇄사회라 해도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통제가 클수록 저항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외국인 용병을 앞세워 탱크와 전투기로 제 나라 국민을 무차별 살육하는 카다피의 광기(狂氣)에서 보듯 인민들을 겨냥할지도 모를 선군(先軍)의 총부리가 두렵다.

 독재와 빈곤 속에 신음하는 북한 동포의 민권회복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써야 할 이 나라 정치인들은 대체 어떤 비책(秘策)을 품고 있기에 강 건너 불 보듯 태평스럽기만 한가? 허구한 날 권력싸움에 골몰하는 저들의 모습이 나로서는 도무지 알지 못할 또 하나의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아닐 수 없다.

 뛰어난 지략가인 제갈량도 다 알 수 없었던 것이 나랏일이다. 하물며 평범한 민초(民草)들이랴? 그러나 그 민초의 하나인 나도 분명하게 아는 것이 하나 있다. 21세기에 오직 하나뿐인 저 봉건세습왕조는 남쪽 어떤 사람들의 끔찍하리만치 두터운 비호(庇護)에도 불구하고 북녘 동포의 뼈저린 한(恨)과 불굴의 자유혼(自由魂) 앞에서 종내 끝장나고야 말리라는 것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