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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쪼개서 ‘38.5%’ 세율 피하는 게 기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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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TS 엘리어트는 1922년 발표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다. 하지만 수십억원의 자산을 굴리는 한국의 부자들에게는 4월보다 5월이 ‘잔인한 달’일 것이다.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탈세를 하지 않는 이상 세금을 피해갈 방법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해도 합법적인 절세(節稅) 방법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다. 세테크의 고수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과세 대상을 잘게 분리하라”는 것이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김중래 상무는 “소득세는 물론 상속세·증여세 등 개인이 내야 하는 대부분의 세금은 과세표준이 커질수록 내야 할 세금이 빠르게 늘어나는 누진 구조”라며 “세금을 낼 사람을 나누고, 수익이 나는 상품을 쪼개고, 긴 시간에 걸쳐 소득을 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天 과세 대상 시간을 늘린다
종합소득세는 근로소득뿐 아니라 임대·이자·배당·사업 등을 통해 얻은 소득을 합산해 매긴다. 금융자산을 굴려 수익을 내면 소득의 15.4%를 원천징수하지만, 금융소득 합산금액이 4000만원을 넘으면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소득세를 신고하고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한다. 수십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굴리는 부자들은 8800만원을 넘는 소득에 대해 최고 세율인 38.5%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크다. 소득세 35%에 주민세 3.5%를 합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즐겨 쓰는 절세 방법은 사전 증여다.

보유 자산을 가족들에게 넘기면 그만큼 금융소득에 대한 세금이 줄어든다. 부자들이 골치 아파하는 상속세도 덜 수 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합쳐 40억원을 갖고 있는 A씨의 경우를 보자. 증여세는 과표에 따라 10%(1억원 이하)에서 50%(30억원 초과)까지 매겨진다. 만약 A씨가 10년마다 10억원씩 아들에게 증여하고 30년 후 세상을 떠난다면 세금 총액은 양도세 5억4000만원과 상속세 9000만원을 합쳐 6억3000만원이 된다. 반면 세상을 떠난 시점에 한꺼번에 상속할 경우 아들은 상속세로 12억9000만원을 내야 한다. 물론 주민세를 포함하고 각종 공제 규모를 감안하면 실제 계산은 훨씬 복잡하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사전에 쪼개서 증여를 하면 세금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일반적으로 사전 증여는 현금보다 부동산이 유리하다. 증여재산가액을 평가할 때 부동산은 통상적으로 시가보다 낮은 개별공시지가나 국세청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넘겨준 부동산 등의 가치가 오를 경우 내야 하는 세금의 차이는 더 커진다. 김예나 삼성증권 세무전문위원은 “세테크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이 중요한 것은 상속세를 매길 때 10년 전부터 양도받은 자산은 상속받은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자산을 나눌수록 세금 부담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地 해외채 등 다양한 상품 활용
갖고 있는 금융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도 세테크 방법이다. 특히 비과세와 분리과세 상품을 잘 활용해야 한다. 10년 이상 저축성 보험은 대표적인 비과세 상품이다. 분리과세 상품인 물가연동채권, 세금우대 상품인 선박펀드나 인프라펀드 등도 거액 자산가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 박승호 국민은행 방배센터 PB팀장은 “지난해 물가연동채권에 이어 올 들어 브라질 국채가 인기를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금 우대에 따라 실질적인 수익률이 높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반 발행된 물가연동채권은 10년 만기에 표면금리가 연 2.5% 안팎이다. 매년 물가가 오르는 만큼 원금도 늘어나지만 세금은 받는 이자에 대해서만 물린다. 장기채이기 때문에 분리과세도 가능하다. 물가상승률이 3%일 경우 분리과세를 선택하면 세후 수익률은 연 3.5% 안팎이 된다. 종합과세 때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투자자라면 연 5.5%짜리 정기예금을 드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연 10% 안팎의 높은 금리이면서도 비과세 대상인 브라질 국채도 마찬가지로 세후 수익률이 높다.

부자들이 펀드보다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도 세금과 관련이 깊다. 펀드에 투자해 수익이 나면 종합과세 대상이 되지만 직접 투자해 얻은 차액은 과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자문형 랩어카운트 열풍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문형 랩은 투자 자문업체가 10~20개의 종목을 추천해 실질적으로 펀드처럼 운용하지만 매매 자체는 가입자가 자신 명의의 계좌를 통해 직접 하게 된다.

익명을 요청한 시중은행 강남지역 PB(프라이빗뱅킹) 센터장은 “금융자산으로 수십억원을 굴리는 투자자는 100만~200만원 정도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소득공제되는 연금저축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치밀하다”고 말했다. 연금저축의 경우 연 400만원까지 근로소득에서 공제가 된다. 억대 연봉을 받는 고소득 직장인의 경우 최고 세율인 38.5%를 적용하면 160만원 가까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그는 “연 160만원의 금융소득을 올리려면 수익률이 세후 4%인 상품에 4000만원을 추가로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人 다수에게 수익을 분산
세테크의 기본 중 하나는 소득을 분산하는 것이다. 연 1억원을 버는 사람 다섯 명이 내는 세금의 합은 연 5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한 사람이 내는 것보다 작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월급을 가족과 나눠 번 것으로 할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이라면 부부 공동 명의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 종합부동산세나 재산세는 반으로 나눠 내면 세금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임대소득도 마찬가지. 종합소득에 포함돼 개인별로 부과되기 때문에 공동 명의로 할 경우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양도소득세도 누진 구조이기 때문에 부부가 각자 세금을 내는 것이 일반적으로 유리하다.

인(人)테크의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장기 보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A씨가 종신보험을 든다고 가정하자. 보험금을 받을 사람으로 자신의 아들을 지정하면 나중에 상속세를 내야 한다. 부인이 수익자라면 증여세 대상이 된다. 반면 아들을 보험 계약자와 보험금을 탈 수익자로 해서 들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아들이 보험료를 낼 만한 수입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실제로는 자신이 내더라도 보험료는 아들 명의의 계좌에서 이체해야 상속세와 관련된 잡음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전 증여는 인적인 분산에도 활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10년마다 배우자는 6억원, 성년 자녀는 3000만원, 미성년 자녀는 1500만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는다. 할아버지가 손자·손녀들에게 증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두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라면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1억2000만원(할아버지 6000만원, 아버지 6000만원),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6000만원을 세금 없이 물려줄 수 있다. 상속세 공제 한도가 5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김창우 기자 kcwsss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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