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재선 ‘친이 비대위장’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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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으로 당 권력의 일부가 주류(친이명박계)에서 비주류(친박근혜계와 소장파)로 이동한 가운데 주류와 비주류 간의 당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주류인 안상수 대표는 7일 대표직에서 물러나기 직전 주류 중심의 비상대책위(비대위)를 구성했고, 비주류는 그걸 거부하기로 했다. 6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대결한 주류와 비주류가 차기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준비 등의 업무를 맡게 되는 비대위 구성 문제를 놓고 또다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안 대표는 7일 친이계 중진인 정의화(4선)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를 구성했다. 친이계 7인, 친박계 3인, 중립 성향 3인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정의화 비대위원장은 8일 본지와 통화에서 “최고위원회의로부터 모든 당권을 위임받았다”며 비대위 활동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비주류는 “물러나는 대표가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라 고 주장했다.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자 소장파가 당을 쇄신해야 한다며 만든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 소속 남경필·정두언·정태근 의원 등 7명은 8일 긴급 회동을 통해 “안 대표가 임명한 비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임의 간사인 구상찬 의원은 “물러나는 당 대표가 당 최고기구인 최고위원회의를 대체할 비대위를 구성할 권한을 가진다는 것은 당헌·당규상 어디에도 없다”며 “절차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물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모임에선 “원내대표 권력을 빼앗긴 친이계 주류가 비대위를 통해 당권을 여전히 농락하려 한다”는 등의 격앙된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중립 성향의 비주류인 황우여 원내대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안 대표가 충분한 논의도 하지 않고 비대위원장을 정했다”며 “정의화 의원이 ‘당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하는데 당헌·당규에 맞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헌 30조에 따르면 대표의 권한대행은 원내대표가 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원희룡 사무총장에게 정확한 유권해석을 내놓으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당 사무처의 유권해석이 나오면 차기 전당대회까지 당무의 최종 결재권은 신임 원내대표인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된 정의화 의원은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의 투톱 시스템은 이미 최고위원회에서 결정됐다”며 “원내대표는 국회, 그 외의 당무는 비대위원장 중심으로 한다는 데 최고위원회도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비대위가 전당대회 준비뿐 아니라 (당헌·당규의) 당권·대권 분리조항 수정 문제나 상향식 공천제 같은 쇄신 과제도 주도적으로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8일 오전엔 “당내 반발이 있으면 의원총회에서 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후엔 ‘비대위가 최고위원회의 권한을 갖는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를 두고 원내대표 권력을 잃은 친이계 주류가 당권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정 의원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은 두 달 뒤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는 만큼 주류와 비주류의 세 싸움은 계속될 걸로 보인다.

김승현·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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