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하임이 U자 개발, 머리카락 굵기 차이로 USGA와 감정 싸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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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20면

싸움은 머리카락 굵기만 한 작은 차이에서 시작됐다. 퍼터를 제외한 모든 골프 클럽은 페이스에 작은 홈인 그루브(groove)가 있다. 그루브는 타이어 표면의 홈과 비슷하다. 볼과 클럽 페이스 사이에서 물이나 먼지·잔디 등의 이물질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그루브가 없다면 스핀이 제대로 걸리지 않고 볼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성호준의 골프 진품명품 <11> 핑 아이2의 그루브 논쟁

그루브의 사이즈와 모양 등은 골프 규제기관에 의해 규정된다. 그루브의 폭은 1000분의 35인치(약 0.9㎜) 이내여야 하고 깊이는 1000분의 20인치(약 0.5㎜) 이내여야 한다. 그루브 사이의 간격은 그루브 폭의 세 배 이상이어야 하며 그루브의 단면은 V자 모양이어야 한다.

골프클럽 헤드의 제조공법이 단조에서 주조로 바뀌던 80년대 초반, 업체들은 그루브 단면을 V자 모양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틀에 쇳물을 부어 만드는 주조 공법은 아무래도 정교하지 못했고 V자 아랫부분이 둥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자 미국골프협회(USGA)는 1984년 ‘V자로 만들기 어려우면 U자형 그루브도 가능하다’고 규칙을 개정했다.

골프계의 토머스 에디슨으로 불리는 핑의 창업자 카스텐 솔하임은 U 모양이 V 모양보다 체적이 크고 더 많은 물과 먼지·잔디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그는 핑 아이2 아이언의 그루브를 U모양으로 바꿨다. 처음 나온 제품은 그루브의 에지가 너무 날카로워 볼의 표면에 흠집을 냈다. 솔하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U자의 끝부분을 곡선으로 처리했다. 제품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USGA는 86년 핑 아이2 아이언이 그루브 끝을 곡선 처리하면서 홈의 폭이 넓어졌고, 따라서 그루브 사이의 간격이 규정보다 좁아졌다고 해석했다.

솔하임은 U자의 수직선 라인을 기준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USGA는 곡선이 끝나는 지점도 포함돼야 한다는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 그 차이는 머리카락 굵기 정도였다. 보석 감식용 확대경으로도 차이를 구분하기 힘든 정도였다.

양측은 감정 싸움을 벌였다. USGA는 핑 아이2를 불법 클럽으로 규정해 USGA가 여는 대회에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싸움은 법정으로 넘어갔고 판결이 나오기 직전인 89년 양측은 합의를 했다. 합의 이전까지 만들어진 핑의 제품을 USGA가 합법 클럽으로 인정하고 핑은 90년부터는 USGA의 규정에 맞게 그루브 디자인을 고친 클럽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PGA 투어가 USGA에 U그루브 자체를 쓰지 못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U그루브 클럽을 쓰면 러프에서도 페어웨이에서 샷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며, 따라서 티샷을 잘 친 사람과 못 친 사람의 변별력이 없어지니 금지시켜야 한다는 논거였다.

USGA의 테스트 결과 U그루브는 볼을 더 잘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더 좋은 스코어를 내게 해준다고 증명할 수는 없었다. 스핀이 많이 걸려 잘 서는 공과 스핀이 적어 멀리 날아가는 공이 있지만 이 중 어느 것이 스코어를 잘 내게 도와준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저탄도용 클럽을 쓰고 다른 이는 고탄도용 클럽을 쓰는데 이는 골퍼의 개성이다.

이로써 솔하임은 USGA와 힘겨운 싸움을 끝냈다. 그러나 이후 더 큰 전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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