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누려온 ‘금피아 권력’ 자기 손으론 결코 못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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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저축은행 ‘뱅크런’ 진정되고 있지만 … 6일 예금 인출을 위해 서울 장충동 제일저축은행을 찾은 한 고객이 대기표와 통장, 도장을 손에 꼭 쥐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3일 임직원의 대출 관련 금품수수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된 이 저축은행의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는 이날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날 빠져나간 예금은 영업이 마감된 오후 4시 현재 470억원. 지난 4일 인출액(1400억원)에 비해 3분의1 정도로 줄어든 규모다. [김도훈 기자]


금융당국은 요즘 패닉에 빠져있다. ‘영원한 대책반장’과 ‘금융 종결자’도 저축은행 사태라는 쓰나미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6일 예고했던 브리핑을 전격 취소했다. 국무총리실이 제동을 건 것이다. ‘금융감독원 쇄신 태스크포스(TF) 구성 및 추진방안’을 밝힐 작정이었다. 총리실은 “책임론에 휩싸여 있는 금융당국 수장이 쇄신안을 발표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이 지난 4일 예정됐던 자체 쇄신안 발표를 이명박 대통령 방문 뒤 급작스레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의 질타와 검찰 수사, 여론 악화에 연타 당하고 있는 금감원 직원들에겐 골프·음주를 하지 말라는 ‘근신령’까지 내려졌다.

 벼랑 끝에 몰린 당국은 날마다 쇄신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쇄신의 초점이 ‘자정’과 ‘검사 강화’에 맞춰질 경우 금감원의 절대권력이 오히려 더 강화될 수 있다 . 저축은행 사태가 그런 경우다. 지난해 저축은행 부실이 표면화하자 금감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금감원은 “제한된 인력과 예산으론 감독에 한계가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저축은행 검사인력 50명을 증원했다. 감독체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금감원의 무한권력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금감원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는 애초부터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였다” 고 말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건 금감원의 ‘공룡권력’을 분산하는 일이다. 현재 전 금융회사에 대해 독점적인 감독권을 행사하는 곳은 1999년 출범한 통합 금감원뿐이다. 한국은행은 은행에 대해서만 금감원과 공동검사를 할 수 있다. 예금보험공사의 검사 범위도 공적자금이 투입되거나 경영개선명령이 내려진 곳 등으로 한정된다. 부산저축은행처럼 대주주와 금감원 직원이 유착하면 10년이 넘도록 아무도 그걸 알 수 없는 구조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자금을 투입하는 건 한은과 예보”라며 “자기 돈을 넣어야 하는 기관이 금감원보다 더 심도 있게 경영 상태를 들여다볼 건 당연지사”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금감원이 모든 걸 틀어쥐고 있는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인허가와 검사, 제재로 이어지는 금융감독의 전 과정을 금감원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며 “금감원이 시장에서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다 보니 견제가 될 리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시·회계 등 시장 관련 기능은 과감히 떼어내 한국거래소나 민간 회계법인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허위공시나 분식을 눈감아주는 경우 일벌백계하는 역할만 당국이 맡으면 된다는 얘기다. 김석동 위원장도 취임 뒤 “회계감사를 차라리 민간회사에 맡길까 생각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셋째는 금융사 경영과 관련된 정보 공개 범위의 확대다. 저축은행 사태는 6개월마다 한 번씩 경영공시를 내도록 한 게 사태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됐다. 금융소비자들은 갑자기 나빠진 수치를 보고 창구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당국은 현재 공시주기를 3개월로 단축하 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대출 사실을 공개토록 하는 등 보다 구체적인 공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금감원의 정치적 독립 없인 ‘말짱 도루묵’이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저축은행 사태는 각 정권이 정치적 이해를 위해 금감원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며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번 기회에 금융위와 금감원, 예보와 한국은행을 포함한 금융감독시스템의 권한 배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반민반관(半民半官) 공룡’ 금감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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