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피로 증후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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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호 35면

원인 모를 피로를 느낄 때, 누구나 한두 번씩은 자신이 만성 피로 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을 앓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해 보았을 것이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일상화된 현대 생활에서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만성 피로 증후군은 단순한 피로감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만성 피로 증후군은 아무리 쉬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근육통이나 관절통, 기억력 장애, 두통, 어지럼증과 같은 아주 다양한 증세를 동반한다.

만성 피로 증후군은 아직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700만 명이 이 원인 모를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2009년 네바다주 리노에 위치한 휘트모어 피터슨 신경 면역병 연구소의 미코비츠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만성 피로 증후군의 원인이 ‘XMRV’라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XMRV가 거의 70%의 만성 피로 증후군 환자들의 피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논문 발표 뒤 미국을 비롯한 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지에서는 만성 피로 증후군 환자의 헌혈을 금지했다.

암을 비롯해 원인을 알지 못하는 많은 질병이 다양한 바이러스 감염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만성 피로 증후군의 원인 또한 바이러스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을 때 과학자들뿐 아니라 많은 환자는 환호를 보냈다. 에이즈 바이러스와 비슷한 종류의 바이러스인 XMRV의 치료를 위해 이미 개발된 많은 항(抗)에이즈 바이러스 약제들이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석 달 후 영국의 런던 임페리얼대학에서 1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XMRV의 감염과 만성 피로 증후군은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후로 XMRV 바이러스 감염이 만성 피로 증후군의 진정한 원인인지 여부는 더욱 더 미궁 속으로 빠졌다.

심지어 미국 내부에서조차 미 국립보건원(NIH)의 알터 박사팀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질병통제소(CDC)의 스위처 박사팀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서로 엇갈린 발표를 했다.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3월 초 보스턴에서 열린 레트로 바이러스 학회에서 국립 암연구소의 파택 박사팀은 XMRV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쥐에 감염되는 두 종류의 바이러스가 인간의 암세포 내에서 유전자 재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변종 바이러스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는 감염될 수 없고, 만성 피로 증후군 환자들로부터 발견된 그 바이러스는 환자의 샘플들이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언론들은 앞다퉈 이 내용들을 전했고, 많은 과학자의 생각 또한 XMRV가 이 병을 일으키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많은 연구팀이 이 병의 원인을 계속 추적하고 있고, 환자들은 치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2006년 워싱턴대학 스미스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만성 피로 증후군은 환자들에게 많은 고통을 겪게 함에도 불구하고 평균 생존율이 다른 정상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이야기하면 만성 피로 증후군 환자라고 해서 암과 같은 다른 치명적인 질병에 더 잘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해당 환자들의 자살률은 조금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만성적인 피로감이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이어지면서 자살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며 사는 게 아직까지는 만성 피로 증후군의 가장 좋은 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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