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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새 3색 신호등, 혼란 줄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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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성일
성균관대 교수·시스템경영공학과

서울시와 경찰이 새로운 교통신호체계를 확정하고 시범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신호체계가 운전자들에게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혼돈스럽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핵심이 되는 부분은 좌회전과 우회전을 금지하는 빨간색 화살표의 사용이다. 운전자들은 그동안 없던 신호가 생긴 데다 일반적으로 화살표는 그 방향으로의 진행을 나타내므로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일은 운전자가 기대하고 해석하는 내용과 경찰청이 신호등을 통해 표시하려는 의도가 일치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의미적 양립성(compatibility) 결여’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운전자들에게 방향 표시를 의미하는 화살표 등이 켜졌다는 것은 인지적으로 ‘지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화살 표시가 나타나지 않고 안 보이는 상태는 아무런 지시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일단 화살표가 보이면 합법적인 지시로 해석한다는 뜻이다. 색상은 그 다음의 문제다. 신호 설계에 화살표라는 기호와 색상을 함께 중복적(redundant)으로 사용하면서 인지적인 강화 효과를 의도한 것 같은데, 이번 경우에서는 정반대로 갈등 형식을 초래하고 있다. 화살표등에 불이 켜진 것은 지시를 의미하는 긍정의 신호인데, 빨간색은 금지를 의미하는 부정적인 색상이기 때문에 중복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혼돈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색상에 대한 국제 기준도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적색이 ‘금지’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는 있지만, 이는 사회적 관습과 약속일 뿐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증권시장에서는 상승의 의미를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물론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증시에서는 파란색이 상승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증시에 색상 표시가 처음 도입될 때 누군가의 착각으로 잘못 도입된 것이지만, 워낙 오래 사용돼 온 표기 방법이라 바꾸지 못하고 그냥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금융당국에서 이제 색상을 변경해 표기하겠다고 발표하고 실시해 버리면 금융시장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경찰 관계자가 빨간색에서는 무조건 정지하라고 했다는데, 아주 드물지만 색맹인 운전자에게는 치명적인 디자인이다. 중복(redundancy)적 설계는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게끔 여러 형태의 설계 방법을 동시에 적용해 사용자가 동일한 의미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지, 서로 다른 의미와 방향으로 갈등(conflict)을 빚고 혼란스럽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혼란을 가중시키는 신호등으로, 운전을 하다 보면 건널목이나 교차로가 아닌 길 한복판에 불쑥 나타나는 빨간색 신호등이 있다. 약 100m 전방의 신호를 미리 알려주는 기능을 의도한 것 같은데, 이도 운전자에게는 인지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한다. 빨간색 신호등은 그 위치에서의 즉시적인 ‘지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널목도 아니고 교차로도 아닌 이 길 위에서 아무런 맥락이 없는 이 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바로 차를 세워야 하는 것인지 운전자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운전은 운전자에게 많은 인지적인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모든 운전자가 언제나 최선의 의사결정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안전과 관계된 모든 신호체계의 설계는 이러한 운전자와 보행자의 모든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신중하게 설계돼야 한다. 또 운전자들이 새로운 체계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의 시간도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공청회나 전문가의 의견 수렴 없이 도로교통법으로 공표해 버리고 바로 시범 실시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이성일 성균관대 교수·시스템경영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