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 軍神으로 추앙, 우리는 말로만 존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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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호 06면

“사업 실패 후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절망했어요. 그러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며 끝까지 의지를 불태웠던 이순신 장군 덕에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칭 타칭 ‘이순신 박사’인 이부경(60·사진)씨의 말이다. 2004년 운영하던 정보기술(IT) 유통업체가 문을 닫게 돼 절망하던 그는 이순신이라는 ‘멘토’ 덕에 지금은 다시 같은 업종의 중소기업 알에프앤유의 대표로 재기했다. 이후 ‘이순신 리더십’에 대해 발품을 팔아 가며 공부했고 수준급 전문가가 됐다. 그렇게 얻은 가르침을 더 많은 이와 나누고 싶어 2009년부터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www.leadershipbus.kr)를 운영 중이다. 이순신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며 ‘리더 이순신’을 기리는 역사기행이다. 지금까지 20회 여행에 500명이 넘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관계자가 동행했다. 50대 여성이 왜 이순신에 흠뻑 빠지게 됐을까.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 운행하는 CEO 이부경

-왜 그랬나.
“2004년 회사 문을 닫았는데 억울하고 분했다. 온 사방이 적 같았다. 그러다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를 보면서 ‘리더로서의 이순신’에게 매력을 느끼게 됐다. 중국·일본의 자료까지 샅샅이 찾아 읽었다. 장군은 일본군을 물리쳐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선조의 견제까지 받으면서 남을 원망하지 않고 항상 솔선수범했다. 이런 정신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
가 크다는 생각에 비영리로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를 마련했다.”

-적국이었던 일본에서 이순신에 대한 평가가 높다는데.
“한산대첩의 패장인 일본의 장수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가장 미운 이도 이순신, 가장 좋아하는 이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이 역시 이순신이고, 가장 차를 함께하고 싶은 이 역시 이순신’이라는 말을 남겼다. 정작 우리는 ‘이순신’ 이름 석 자에다 전쟁 영웅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진 않은가. 일본의 해군 전략 연구가인 가와다 고오(川田功)는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떠받들기만 할 뿐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선 일본인보다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맞는 말이다. 이순신은 일본에서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다. 우린 말로만 이순신을 존경하진 않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순신 리더십의 특징을 뭐라 보나.
“솔선수범이다. 장군은 항상 부하들보다 먼저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상사는 속일 수 있어도 부하의 눈은 못 속이는 법이다. 솔선수범이 중요한 이유다. 장군은 남을 원망할 시간에 자신이 먼저 옳은 행동을 보였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비해 병력도 부족했고 나라의 지원도 모자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23전23승이라는 기적을 만든 비결이 여기에 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목욕재계를 한 뒤 마음을 다듬으며 『난중일기』를 써 내려가는 ‘자성의 리더십’도 보였다. 그의 리더십을 공부하면서 나는 사업에 실패하기 이전의 내가 교만하진 않았는지, 직원들과 소통하는 대신 폼만 잡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됐다. 남을 원망하기보다 나를 돌아보게 되니 인생이 아름다워지더라. 부정이 아닌 긍정의 힘, 절망이 아닌 희망의 힘이다.”

-기업가들에게 이순신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기업도 일종의 전쟁터 아닌가. 끊임없는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 처음엔 혼자 좋아서 이순신 장군 유적지를 다니다가 주변의 반응이 좋아 몇 명을 모아 여행을 떠났던 게 오늘날 ‘이순신 파워 리더십 버스’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사실 우린 말로만 이순신 장군을 존경할 뿐 장군의 탄신일도 잘 모르지 않나.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나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이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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