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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대피” 재난 문자, 3195만 대 휴대폰엔 왜 안 뜰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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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에 사는 회사원 조혜민(26·여)씨는 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불안감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재난이 닥쳤을 때 제대로 경보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예전엔 “폭우가 예상됩니다” “태풍이 접근하고 있으니 주의하세요” 같은 경보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로 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문자 서비스가 사라졌다. 정확하게 지난해 미국 애플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으로 바꾼 뒤부터다. 조씨가 이런 문자를 볼 수 없는 이유는 재난이나 긴급 사태가 있을 때 문자로 알려주는 서비스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2세대 휴대전화에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조씨가 쓰는 아이폰은 3세대 광대역 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방식의 통신망을 쓰고 있어 대상이 아니다.

 지난달 말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5135만 명 중 3세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3195만 명, 2세대 가입자는 1940만 명이다. 915만 명에 달하는 3세대 스마트폰 가입자(SK텔레콤, KT)를 포함해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의 62%가 재난문자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세대는 신규 가입(SK텔레콤, KT)이 거의 없어 이용자가 줄고 있고, 3세대는 스마트폰 도입 등으로 가입자가 계속 늘고 있다. 조씨는 “비싼 스마트폰을 샀으니 당연히 서비스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재난 안내문자가 들어오지 않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 문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인데 휴대전화를 바꿀 때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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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문자서비스는 소방방재청이 2006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2세대 기술에 포함된 문자방송시스템(CBS)을 이용해 태풍이나 호우, 폭설 등이 예상되는 지역의 기지국 안에 있는 휴대전화 가입자에게 동시에 문자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2008년 109건, 2009년 334건, 지난해엔 503건의 재난문자가 발송돼 휴대전화 가입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시스템이 효율적인 것은 재난이 닥쳤거나 예상되는 특정한 지역을 지정해 그곳에 있는 휴대전화 가입자에게 동시에 문자로 안내할 수 있다는 점이다.

2세대 휴대전화에 들어온 소방방재청의 긴급재난문자정보. 하지만 더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와 영상통화, 인터넷 검색 등 다양한 기능을 자랑하는 3세대 스마트폰에선 이런 문자를 받을 수 없다. [강정현 기자]

 하지만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3세대 서비스가 2007년 도입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내 1, 2위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KT가 채택한 WCDMA 국제표준엔 CBS 기능이 빠졌다. 소방방재청은 3세대 서비스에서도 재난문자를 도입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와 실험까지 했지만 결국 도입하지 못했다. 표준으로 들어 있지 않은 기술을 추가로 넣다 보니 휴대전화가 기지국과 접속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2세대에 비해 배터리가 10배나 빨리 소모됐고 문자 전송 오류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기술 개발과 실험을 통해 배터리 소모량을 줄이긴 했지만 3세대 서비스에서 재난문자를 도입하지는 못했다.

 3세대 서비스에 재난문자 도입이 어렵게 되자 소방방재청은 지난 1월 말 4세대 휴대전화에선 재난문자서비스가 들어갈 수 있도록 이동통신사, 단말기 제조사와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소방방재청 서상덕 방재대책과장은 “기술적인 문제로 3세대 휴대전화에 재난문자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방송통신위원회와 이동통신사, 휴대전화 제조사와 협의해 4세대 휴대전화엔 꼭 재난문자를 넣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 중 본격적인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는 4세대 휴대전화에서 재난문자를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하긴 이르다. 배터리 소모 등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이동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가입자들이 재난문자를 불편해 하고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고 민원을 제기한다면 회사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난 안내엔 휴대전화만큼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이 없다며 정부와 국민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장석진 교수는 “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우리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휴대전화 재난안내 시스템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배·임주리 기자

☞◆3세대 휴대전화=1세대 휴대전화는 음성통화, 2세대는 문자메시지, 3세대 서비스는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세대에선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CDMA 기술을 썼지만, 3세대에선 유럽 방식인 WCDMA를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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